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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형준 시인 / 초저녁 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9.

박형준 시인 / 초저녁 달

 

 

내게도 매달릴 수 있는

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침에는 이슬로

저녁에는 어디 갔다 돌아오는 바람처럼

 

그러나 때로는

나무가 있어서 빛나고 싶다

 

석양 속을 날아온 고추잠자리 한 쌍이

허공에서 교미를 하다가 나무에 내려앉듯이

 

불 속에 서 있는 듯하면서도 타지 않는

화로가의 농담(濃淡)으로 식어간다

 

내게도 그런 뜨겁지만

한적한 저녁이 있었으면 좋겠다

 

 


 

 

박형준 시인 / 우리가 아직 물방울 속에서 살던 때

 

 

이슬방울 속에

집 짓는 달

 

당신이 불며

웃는 모습 좋았죠

 

먼발치에서

꽃 피는 날 오거든

 

이슬방울 집

작은 방 불빛

 

당신의 입김에

흔들리며

 

아직

켜 있는 줄 아세요

 

 


 

박형준(朴瑩浚) 시인

1966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 박사.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 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있다』 『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불탄 집』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이 있음.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교수. 제15회 동서문학상, 2009년 '소월시문학상  대상'. 2020. 풀꽃문학상 대숲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