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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우대식 시인 / 기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9.

우대식 시인 / 기도

 

 

 고등학교 신입생 시절 나는 사이비 전도관의 신도였다. 산동네 언덕배기 작은 교회 골방으로 기도를 하러 들어갈 때마다 신의 커다란 손바닥이 내 등짝에 천국의 인을 쳐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꽃무늬 손수건을 늘 손에 쥐고 있던 피아노를 치던 여자 아이와 함께 천국에 이르러야 한다는 강박은 그를 대신해 두 배로 기도했던 것이다. 산동네에 뜨던 별들은 가난했지만 아름다웠으며 신의 말씀에 왜 나는 기쁨보다 눈물을 흘렸는지 알 길이 없다. 내가 믿었던 것은 슬픔의 신이었나. 여자 아이가 늦은 밤 혼자 피아노를 치고 있는 뒷모습은 신 앞에 흘리던 눈물보다 더 많은 슬픔을 안겨다 주었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짜라투스트라를 한없이 미워하며 그 여자 아이와 함께 천국에 이르기를 무릎이 까지도록 기도했었다.

 

 


 

 

우대식 시인 / 강이 휘돌아가는 이유

 

 

강이 휘돌아가는 이유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직선의 거리를 넘어

흔드는 손을 눈에 담고 결별의 힘으로

휘돌아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짧은 탄성과 함께 느릿느릿 걸어왔거늘

노을 앞에서는 한없이 빛나다가 잦아드는

강물의 울음소리를 들어보았는가

강이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이유는

굽은 곳에 생명이 깃들기 때문이다

굽이져 잠시 쉬는 곳에서

살아가는 것들이 악수를 나눈다

물에 젖은 생명들은 푸르다

푸른 피를 만들고 푸른 포도주를 만든다

강이 에둘러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것은

강마을에 사는 모든 것들에 대한 깊은 감사 때문이다

 

 


 

우대식 시인

1965년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 숭실대 국문과 졸업. 아주대학교에서 박사학위. 1999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 『단검』 『설산 국경』 『베두인의 물방울』 등과 그 밖의 저서로는 『죽은 시인들의 사회』 『비극에 몸을 데인 시인들』 『선생님과 함께 읽는 백석』 등이 있음. 「해방기 북한 시문학 연구」로 박사학위 받음. 현대시학작품상 수상. 현재 숭실대 문예창작과 강사로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