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주 시인 / 나무에게
숲의 밤은 깊고 어둡다 설핏, 눈뜨면 날카롭게 발톱 곧추세운 짐승 울음소리
나는, 아직도 푸른 여름밤을 잊지 못하고 물기 없는 침묵 속에서 밤을 지샌다 겨울 틈바귀에서
색색의 꽃씨 포대기에 업고 버석거리는 생각
귀룽나무 밤마다 껴안고 뜨겁게 산동네 맵찬 얼음을 깬다 내려가고 싶다
산비탈 쌓인 눈 툭툭 털고 고요한 당신
건조한 뿌리에 진종일 물 주고 싶다
양현주 시인 / 신저가 계단
설익은 석류가 시큼한 기억을 씹는다 급락을 줍는 개미들
열린 귀는 소문을 따라가고 파란 캔들을 씹는 사이 솔깃한 언어들이 스크린에 무성하다
계절 몇 칸을 더 건너야 꽃이 핀다는데 풍문은 분분해 투자자 심경에 풀물이 든다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은 조금씩 누설되고 여름은 두려운 속도로 겨울로 진다
매수를 움켜쥔 어느 순간 우리는 같은 추억을 오래 품은 글로벌 개미군단 긴 손목의 동향을 서성이는 손가락이 차트를 닮았다
영웅문을 닫고 나오면 귓등으로 흘린 삼전 개미가 부지런히 방향을 틀고 있다
석류처럼 전망은 아직 떫어 무리는 혁명을 따르지 못하는 소멸이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정현 시인 / 청동겨울 외 1편 (0) | 2023.03.27 |
---|---|
최호빈 시인 / 투석기(投石紀)의 성 외 2편 (0) | 2023.03.27 |
강인한 시인 / 빈 손의 기억 외 4편 (0) | 2023.03.27 |
박진형 시인 / 희망 사육 외 1편 (0) | 2023.03.27 |
송은숙 시인 / 노을 아래서 외 1편 (0) | 2023.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