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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미산 시인 / 꽃들의 발소리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29.

박미산 시인 / 꽃들의 발소리

 

 

아타카마 사막

아무도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이었다

몇 천 년 만에 폭우가 내렸다

내 생애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넘실대는 활자를 품고

달의 계곡을 걷기 시작했다

 

모래 바람이 부풀고 있다

싹트던 문장들이 낙타 등에서 곤두박질쳤다

발길에 채이고 짓밟히며

죽음의 계곡으로 떨어졌다

찢어지고 젖어 알 수 없는 문자들

 

이름 한 번 얻지 못한 사막 깊은 곳에서

뜨겁게 달궈진 시가 훗날 발굴될 수 있을까

빗방울을 발목에 걸고

내일 또 내일을 걸어야겠다

흔적 없이 또 사라질지라도,

 

 


 

 

박미산 시인 / 근황

일곱 번째 목뼈 속에서

흰 구름이 말을 한다

습관적으로

속으로만 짜던 무늬

내 몸을 입고 나온 구름이

필름에 앉아 있다

긴 시간을

오래오래

함께 갈 구름인데

뭉개진 흰 구름에

검은 비가 내린다

아프니?

오,

제발

 

 


 

박미산 시인

1954년 인천에서 출생. (본명: .明玉). 방송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2006년 <유심> 신인상.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너와집〉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현재 고려대, 방송대, 서울디지털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