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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손종호 시인 / 우리들의 연혁(沿革)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29.

손종호 시인 / 우리들의 연혁(沿革)

 

 

밤 유리창에

한 마리 나방이가 퍼득입니다.

등 뒤 어둠 속에는

그가 헤매어 온 길들이 흐느끼고

바람은 그 길을 따라 나뭇잎 흔들며

제 영혼의 힘을 비춰봅니다.

오오 흘러가는 것들은 아름답지만

흐를 수 없는 분열의 어리석음이

불빛을 부릅니다.

미지를 향한 머리맡엔

투명한 절망이 이리 단단하고

온 밤의 이마를 적시는 그리움의 피.

막막한 심연 위로 떠오르는 아득히

오래된 눈물이 하나

중천에 별이 되어 굽어봅니다.

 

 


 

 

손종호 시인 / 양쯔강

 

 

흐린 놈들아

흐려서 더는 나아갈 수 없어

강물로 누운 놈들아

태초에 우리는 맑은 이슬이었거니

풀잎위로 퉁기는

비파소리였거니

막막한 가슴으로

이마 푸른 구름으로 떠돌다가

어두운 시대

밝게 잠 못드는 시인의 처마를

소낙비 되어 내렸거니

광활한 대륙의 가슴팍을

오래 오래 적셨거니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놈들아

잠 속의 잠에 갇혀

강물로 누운 놈들아

소용돌이치는 건 죽은 피

아우성치는 건 회한뿐일 지라도

상처 속의 상처

절망 속의 절망의 한 뿌리라도

적시고 데불어

그 늠름한 혼돈으로 뻗쳐

마침내는 끝간 새벽바다에 닿거라.

 

 


 

손종호 시인

1949년 대전에서 출생. 시인, 문학박사, 신학박사. 충남대학교 대학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졸업.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의 당선과 《문학사상》 신인상 당선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새들의 현관』외 다수 있음. 문학사상 신인상, 한국비평문학상 본상 수상. 현재 충남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