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균원 시인 / 날마다 그 언저리
술 고픈 저녁은 오락가락하기에 좋다 어디 한번 줄을 당겨 볼까 종소리가 붉은 첨탑 사방으로 번져 갈지 양동이 물이 쏟아져 뒤통수를 적실지 아직 모른다 댓살에 밥풀 먹여 당신이 손수 만들어 준 방패연, 꼬리가 없는 것은 외롭고 오른쪽이었다가 다시 왼쪽이었다가 그렇게 띄워 놓고 놓지 못하는 줄이 있다 기억은 물길 같아서 따라가면 멀어지고 거스르면 덮쳐 온다 수천 잎이 몰려들어 한꺼번에 손을 내미는 숲 언저리 혼잡 구간에서 써낼 수 없는 바람은 지울 수 없다 친구는 오늘도 다정하다 목은 비트는 거다, 따는 건 구식이지 회오리치는 토네이도가 술병 바닥에서 모가지로 사라져 가는 창공을 등지고 하강, 다시 침잠이다 당신의 뒤에 섬으로써 시작되는 줄 당긴 줄은 놓을 수 있다 놓은 줄은 당길 수 없다 저녁 햇살은 날마다 그 언저리여서, 쓰다
양균원 시인 / 카운트다운
비 갠 후 서울의 낯빛이 돌아왔다 모두 제자리여서 반갑다 거리가 붐비기 시작하는 점심 시간 한 끼의 수다를 찾아 오늘도 기꺼이 떠날 것이다 재스민을 따라 얼룩말 띠무늬를 밟자 서른에서 카운트 다운이 시작된다 거꾸로 가는 시간은 항상 제로에서 안색을 바꾼다 모퉁이 은행에서 우회전이 불안 보도블럭의 연속무늬를 조심하라 그곳이 그곳인 곳에 무너지는 빈칸이 많다 이음매 속에 숨어 사는 모서리 갈라서자 바로 날을 세우는 각도가 있다 정장에 인식표를 드리우고 세상의 요철을 따라가는 정오의 리듬 누군가 기울면 누군가 기울고 아무나 서면 아무나 서고 도미노가 도착한 끝에 유리문이 닫히고 있다 수년을 다니던 든든한 길이지만 오늘 술렁이고 있다 빗물이 할퀴고 지나간 어젯밤 발길 아래 물길이 얼마나 헤집었는지 딛자마다 꺼지는 여기저기 빈 속에서 누런 위액이 돋는다 구수한 순두부를 찾아가는 길 아래 길이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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