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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백근화 시인 / 파랑새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1.

​백근화 시인 / 파랑새

 

 

 정청조 형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내가 스물두 살 때 쉰세 살이었던 정청조 형

 

 쉰셋 정청조 형은 감격했네 검사가 말이야 법대 후배더란 말이야 커피를 내려 주더라구 이 안에서 커피가 좀 귀한가 덕분에 한 잔 진하게 마셨지 커피 향이 얼마 만이었는지 몰라 담배두 권하는 걸 사양했어 괜히 감질나잖아 어차피 취조실 나오면 다시 못 피게 될 걸 뭐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어찌나 살가운지 이놈이 친군지 적인지 잠시 헷갈리더라니까

 

 쉰셋 정청조 형은 애틋했네 내가 청조잖아 파랑새 말이야 푸를 청 자에 새 조 자 무슨 이름을 이렇게 직설적으루 지었는지 몰라 내가 그래서 이 나이 먹도록 파릇파릇해 지금까지 총각으루 살 적에는 내 딴에 순수한 마음이 있는 거야 사귀는 아이가 스물일곱 먹었어 나보구 오빠 오빠 그래 아까 접견실에 들어오자마자 부터 울기 시작하는데 우느라고 아무 말도 못 하고 시간이 다 가버렸어 내가 자기 울지 마 자기 울지 마 하는데두 어찌나 서럽게 울어대던지 말이야 내가 낫살이나 먹어서 이십 대 아이를 장난삼아 만났겠어 내가 나름의 순정이 있거든 그 아이가 속눈썹이 떨어져 나오도록 흐느끼는데 내 심장이 떨어져 나올 것 같은 거야

 

 쉰셋 정청조 형은 친절했네 이제 밥들두 다 먹었으니 요구르트나 하나씩 까 놓고 얘길 시작하지 어제 묘옥이가 길산이 가슴팍을 파고드는 얘기까지 했었지? 그래서 인제 길산이가 묘옥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구 있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묘옥이가 꼬옥 안아 주세요 하며 길산이 저고리 속으루 손을 넣어 갖고는 길산이 가슴을 이렇게 이렇게 쓰다듬었단 말이야 그래 길산이가 묘옥이 무명치마를 젖혀 올린 거야 그러구는 속바지를 끌어내리는데 묘옥이가 몸을 이리 곰실 저리 곰실 뒤트는 거야 어느덧 부끄러움은 멀어지고 이제 묘옥의 손놀림이 대담하고 익숙해져서는 결국 저고리를 젖히고 온몸으로 길산이를 말이야 길산이를 말이야

 

 쉰셋 정청조 형은 억울했네 내가 횡령한 걸 인정하면 액수가 그리 큰 것두 아니구 대강 집행유예루 나갈 수두 있겠지 하지만 정말 한 적이 없는 걸 어떻게 했다 그러냐구 변호사두 처음엔 그냥 인정하구 형이나 깎자구 덤비는 거야 내가 법을 공부하구 대학에서 선생질하는 처지에 어뜨케 그러느냐구 그러니 환장할 노릇이지 그놈의 무죄 주장만 접어두 금방 나가구 말 걸 검사구 판사구 골탕 한번 먹어봐라 하는 건지 자꾸만 연기(延期)를 태우는 거야

 

 파랑새를 찾아 길을 떠나던 시절이었네 애타게 찾던 파랑새를 담장 안에서 맞닥뜨린 나는 정청조 형의 결백을 믿었든가 말았든가 파랑새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웹진 『시인광장』 2023년 2월호 발표​

 


 

백근화 시인

서울에서 출생. 단국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21년《시와 경계》신인우수작품상에 시 「봄 전립선약을 처방 받다」 외 3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