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순 시인 / 초록시집
시를 찾아보려 해요 생각해도 생각나지 않는
초록정원으로 들어가 꽃나무가 되어보려 해요 내 시를 찾아보려 해요 숲이 되어 바람을 키우고 싶어요 바람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구름그림자를 베고 눈을 감으면 나뭇잎들 꽃잎들 나풀거려요 초록 단어가 떠다녀요
하늘을 날아볼까요 생각해도 생각이 안 나는 느낌표를 찾아오고 싶어요 마음에 눈 코 입을 달아주고 싶어요 구름 등줄기를 따라 비가 내리면 나뭇잎은 후드득 나무와 나무 사이 새의 날개는 젖지 않아요
나비가 날아오르는 순간 꽃은 어떻게 가만있는지 나풀나풀 물음표를 입에 문 초록나비 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산 2020 상반기 수록
박천순 시인 / 복福
나이 오십 넘어서 첫돌 때 받은 밥그릇을 가져왔다 건네주는 엄마 얼굴처럼 검은 녹 얼룩이 깃든 놋주발 세트 뚜껑에 '복'자가 선명하다
아직 걸음도 서툰 아이에게 부모님은 당신들의 복을 다 긁어모아 고봉으로 밥을 채우고 양수냄새 비릿한 미역국을 푸셨을 거다
첫돌 이후 멋대로 걸었을 걸음이 복을 향한 걸음이었을까 반백의 희끗한 걸음 방향을 놓친 지 오래
묵은 때를 닦으며 아직 유효한가 말갛게 빛나는 복 두 손으로 어루만져 본다
-월간문학 2021. 7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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