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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천순 시인 / 초록시집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1.

박천순 시인 / 초록시집

 

 

시를 찾아보려 해요

생각해도 생각나지 않는

 

초록정원으로 들어가

꽃나무가 되어보려 해요

내 시를 찾아보려 해요

숲이 되어 바람을 키우고 싶어요

바람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구름그림자를 베고 눈을 감으면

나뭇잎들 꽃잎들 나풀거려요

초록 단어가 떠다녀요

 

하늘을 날아볼까요

생각해도 생각이 안 나는

느낌표를 찾아오고 싶어요

마음에 눈 코 입을 달아주고 싶어요

구름 등줄기를 따라 비가 내리면

나뭇잎은 후드득

나무와 나무 사이

새의 날개는 젖지 않아요

 

나비가 날아오르는 순간

꽃은 어떻게 가만있는지

나풀나풀 물음표를 입에 문

초록나비 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산 2020 상반기 수록

 

 


 

 

박천순 시인 / 복福

 

 

나이 오십 넘어서

첫돌 때 받은 밥그릇을 가져왔다

건네주는 엄마 얼굴처럼

검은 녹 얼룩이 깃든 놋주발 세트

뚜껑에 '복'자가 선명하다

 

아직 걸음도 서툰 아이에게

부모님은 당신들의 복을 다 긁어모아

고봉으로 밥을 채우고

양수냄새 비릿한 미역국을 푸셨을 거다

 

첫돌 이후 멋대로 걸었을 걸음이

복을 향한 걸음이었을까

반백의 희끗한 걸음

방향을 놓친 지 오래

 

묵은 때를 닦으며

아직 유효한가

말갛게 빛나는 복

두 손으로 어루만져 본다

 

-월간문학 2021. 7월호 수록

 

 


 

박천순 시인

1965년 경북 영주에서 출생.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2011년 《열린시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달의 해변을 펼치다』(천년의시작, 2016)가 있음. 2015년 제7회 열린시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