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늘 시인 / 나는 늘 아파
딸기밭을 걷고 있어 자박자박 네게로 가는 길이야 네게선 절망적인 맛이 나는구나 11월의 모든 날은 너를 위한 거야 그러니 날 마음껏 다뤄 줘 고양이처럼 내 쇄골을 핥아 주면 좋겠어 까끌까끌한 네 형에선 핏빛이 돌겠지 한번 으깨진 마음은 언제쯤 나을까 궁금한 게 너무 많아 나는 나를 설득할 수가 없어 그래도 네게선 딸기향이 나 세상이 조금 더 우울해지고 있는데도 너는 맛있고 맛있고 맛있어 심장이 뛰어 어느 날 내가 숨을 쉬지 못하면 얌전한 키스를 하면 돼 맛있겠다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마 너는 미소 짓는 법을 다시 배워야겠구나 푸른 박쥐처럼 날고 싶어 밤이 오면 나방 떼처럼 아무 곳이나 쏘다니겠지 온몸에 멍이 들고, 눈물로 얼룩진 발목 쓰다듬어 줄래? 관자놀이 밑을, 턱 선을, 감은 눈을 그러니 날 마음껏 다뤄 줘 나는 늘 아파 아파
김하늘 시인 / 나의 소우주 풋사과의 냄새가 코를 홀리는데 나의 랭보가 이 계절을 사랑하고 있어 삿된 마음들은 불로 태워버렸어 주근깨 위로 꾸덕꾸덕 말라붙은 수박씨를 후후 분다 정서적 허기를 느낄 때 말해, 날 사랑한다고, Dis-lui que tu m'aimes! 예를 들면 네 이름이 와타나베였으면 좋겠어 너의 어중간한 우울도 좋아 치아가 빠져도 키스는 가능해, 입안 가득 오렌지 주스를 넣어줄게 우리는 알로그루밍*을 하며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지 이리 와, 나랑 같이 울자. 사과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왔어 망가진 것을 먹자, 그게 사명이듯 응결된 우울을 조금씩 찢어발기며 가젤라 장미를 샀어 눈을 감으면 너는 나의 소우주가 된다. 머리 위로 상투스가 울리는 듯해 타조 울음소리가 얼마나 예쁜지 아니 맥주와 딸기 주스를 섞은 느낌이야 광이 나는 은식기처럼, 빛나는 널, 이토록 이타적으로 사랑하길 발가벗고 잔디밭을 뛰어다닐 수 있길 말해, 날 사랑한다고, 아름답고 수줍은 것만 남기를 *고양이들이 서로 마음을 허락한 상대에 대한 신뢰의 표현
-『공시사』2021년 12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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