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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하늘 시인 / ​나는 늘 아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1.

김하늘 시인 / ​나는 늘 아파

 

 

딸기밭을 걷고 있어

​자박자박 네게로 가는 길이야

​네게선 절망적인 맛이 나는구나

​11월의 모든 날은 너를 위한 거야

​그러니 날 마음껏 다뤄 줘

​고양이처럼 내 쇄골을 핥아 주면 좋겠어

​까끌까끌한 네 형에선 핏빛이 돌겠지

한번 으깨진 마음은 언제쯤 나을까

​궁금한 게 너무 많아 나는 나를 설득할 수가 없어

​그래도 네게선 딸기향이 나

​세상이 조금 더 우울해지고 있는데도

​너는 맛있고 맛있고 맛있어

​심장이 뛰어

​어느 날 내가 숨을 쉬지 못하면

​얌전한 키스를 하면 돼

​맛있겠다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마

​너는 미소 짓는 법을 다시 배워야겠구나

​푸른 박쥐처럼 날고 싶어

​밤이 오면 나방 떼처럼 아무 곳이나 쏘다니겠지

​온몸에 멍이 들고, 눈물로 얼룩진 발목

​쓰다듬어 줄래?

​관자놀이 밑을, 턱 선을, 감은 눈을

​그러니 날 마음껏 다뤄 줘

​나는 늘 아파

​아파

 

 


 

 

김하늘 시인 / ​나의 소우주

풋사과의 냄새가 코를 홀리는데

나의 랭보가 이 계절을 사랑하고 있어

삿된 마음들은 불로 태워버렸어

주근깨 위로 꾸덕꾸덕 말라붙은 수박씨를

후후 분다

정서적 허기를 느낄 때

말해, 날 사랑한다고,

Dis-lui que tu m'aimes! ​

예를 들면 네 이름이 와타나베였으면 좋겠어

너의 어중간한 우울도 좋아

치아가 빠져도 키스는 가능해,

입안 가득 오렌지 주스를 넣어줄게

우리는 알로그루밍*을 하며

사랑을 확인받고 싶었지

이리 와, 나랑 같이 울자.​

사과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왔어

망가진 것을 먹자, 그게 사명이듯

응결된 우울을 조금씩 찢어발기며

가젤라 장미를 샀어

눈을 감으면

너는 나의 소우주가 된다.

머리 위로 상투스가 울리는 듯해​

타조 울음소리가 얼마나 예쁜지 아니

맥주와 딸기 주스를 섞은 느낌이야

광이 나는 은식기처럼,

빛나는 널,

이토록 이타적으로 사랑하길

발가벗고 잔디밭을 뛰어다닐 수 있길

말해, 날 사랑한다고,

아름답고 수줍은 것만 남기를​

*고양이들이 서로 마음을 허락한 상대에 대한 신뢰의 표현​

 

-『공시사』2021년 12월호 중에서

 

 


 

김하늘 시인

1985년 대구에서 출생. 2012년 하반기《시와 반시》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샴토마토』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