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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벼리영 시인 / 종이상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21.

벼리영 시인 / 종이상자

 

 

1

단단히 채워진 몸 주춧돌 되었다가

헐거워 뒤뚱이던 벼랑 끝 아찔하다

생물을 날로 삼킨 날

속 터질까 두렵다

 

당신의

중독증이 내면에서 반짝이면

더께 한 내 몸에는 딱지 훈장 빛난다

주소가 채근하는 어둠

달빛 밟고 달린다

 

멋지게 포장되고 명품으로 채웠어도

끈적한 투명 띠로 겹겹이 봉인된 생

한 커플 벗기고 나면

불태워 없어질 몸

 

2

길가에 버려졌다 한숨 소리 들려오고

리어카 실려 가며 노숙마저 포개진다

각지고 모났던 이승, 접히고 접히었다

 

격동의 시간 견딘 끝은 또 다른 시작

노숙자 이불 되고 길냥이 요도 된다

내 몸은 죽어서 둥글어진

두루마리 화장지

 

-제4회화시조집<종이상자>표제시

 

 


 

 

벼리영 시인 / 당신은 진짜입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난 가짜입니다

짝퉁이란 말이지요

진품인 척 당신보다 더 물광 피부로

앉아있어요

당신 숨소리 들으며 가끔 착각에 빠지지요

심술 사나운 시샘 같은 건 어울리지 않아서

당신 손 잡아보지만 씨알도 안 먹히네요

가문을 조롱하고 장인을 멸시하고 누군가를

현혹한다지만 엄연히 내게도 족보란 게

있어요

 

난 SA 급입니다 미러 급보다 한 수 위이고

잉어 없는 잉어빵이지만 잉어보다 더 맛있는

간식 같은 거란 말이지요

홀로그램이 없다고 제 속을 뒤집어 보거나

하진 말아요

내면에서 빛나는 증표 따윈 필요 없어요

 

명품 옷 입고 가짜 가방 드는 그녀,

명품 가방 들고 저잣거리 옷을 입은 당신은

진짜입니까? 가짜입니까?

 

당신의 빛나는 가문 따라 속이며 살 수 있어서

통쾌합니다

늘 불편해 보이는 명품 그대는 진열장에서

시간을 좀 먹길 바랍니다

 

발정 난 거래가 줄을 잇는 비밀의 정원은

비번을 모르면 입장이 불가해요

알면서도 속아주는 거짓말처럼 소는 악어

행세를 하고 유유히 비원을 빠져나가지요

 

가짜는 가짜를 양산합니다

진위를 구별 못해 주머니가 거덜난 당신은

속고 속이는 삶의 공범자예요

 

더 깊은 상처는 내지 않기로 해요

 

 


 

벼리영 시인

전남 여수 출생. 본명: 이영숙. 시조시인, 화가. 아동문학가. 국립 경상대학교를 졸업. <월간문학> 시조부문 신인상 수상. 고운 최치원 문학상 본상(시조). 2019년 한국시조작가상, 2019년 <시학과 시> 시 공모상 대회화 시조집 <더 맑은 하우스>, <시조를 그리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시학과 시' 작가회 부회장. 한국시조문학진흥회 회원. 대한미술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