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 시인 / 풍경의 관계학
세상 만물에 어둠이 내려도 나는 창 하나만큼의 어둠을 볼 뿐
나의 방 안에서 가장 잘 익은 것은 침묵, 의심에 몸을 맡기지 않은 것이다
이팝 꽃은 보릿고개가 피운다 하지만 이밥은 보리를 모르는데
세월의 한켠을 견뎌온 불이 바람처럼 일어나고 빛처럼 사라지기도 하고 누군가의 눈물로 닦기도 하는 창이라는데
나무는 햇살만큼의 키를 키우고 밤은 내려와 생각에 망명정부를 세우지만 이곳의 날씨가 바뀌는 건 가뭄도 뿌리의 깊이 탓도 아니다
세월의 두께만큼 닦아야 드러나는 아린 거울 문장도 어둠 속 풍경이다 간절함이 없다면,
이정모 시인 / 매혹을 숨기다
의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건 먼저 떠난 자 뿐인 줄 알았다 별에 영혼을 숨긴들 앉지 못하는 자가 그렇게 묵고 싶었던 속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마음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살내가 삶의 깊이로 내리는 그 겨를에는 같이 놀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얼굴을 만질 수도 초월로 가둘 수도 없는 찰나 빛나기에 더욱 그립고 서러운 한순간은 왜 화들짝 놀라서 떠나기만 하는가 마음이 가까우면 닿는 곳마다 창문인데 누가 앉을 자리를 들인다는 말 미래를 위해 필요한 말이지만 언제나 지금 하는 것인 줄 몰랐다
-시집 <허공의 신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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