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시인(대구) / 잃어버린 것을 찾다
벚꽃 잎들은 지난 추억과 지난 이야기들을 적은 편지를 무표정한 도시인들에게 보낸다.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났던 찻집에서 그대가 집어 들었던 연두색 볼펜 그렇게 만남은 시작되었고 인생은 아름다운 색으로 변했었다. 벚꽃 잎 뒤에서 그 따뜻했던 시절이 일렁인다. 그 여인과의 따뜻한 포옹이 피어나고 있다.
-시집 『편지와 물고기』에서
김경수 시인(대구) / 편지와 물고기
애인에게 보낼 편지를 들고 찬 바람에 떨고 있는 한 소심한 사내가 강물 속을 들여다본다. 물고기는 물의 치마에 새겨진 문양文樣이다. 물 속 자유민주공화국에서 비로소 자유를 쟁취한 푸른 지느러미가 맑은 소리를 매달고 흔든다. 물고기의 내장을 통해 차가운 소리가 흐를 때 물고기라는 언어는 편안해진다. 물고기란 언어가 꼬리지느러미에 힘찬 사유思惟를 달고 강물 속에서 유영한다. 저녁노을이 산 뒤로 넘어가자 산이 짧은 순간 더욱 선명한 검은 색이 되어 언어들이 헤엄치고 있는 강 속으로 뛰어든다. 물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흰 꼬리지느러미를 단 시간이 끊임없이 사라지는 것을 파란 수초 같은 현재가 끊임없이 새로운 현재로 바뀌어지는 것을 물고기는 시간도 흐르는 알갱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象徵이다. 사라지는 존재가 사라지는 시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물고기란 언어가 사라지는 인간의 뒷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본다. 한 소심한 사내가 살고 있는 산 속 작은 집 창문을 저녁 7시가 두드린다. 애인에게 보낼 편지를 아직 보내지 못하고 있다. 편지가 한 사내의 마음을 읽고 꿈 속 우체통으로 스스로 들어간다.
-시집 『편지와 물고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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