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김경수 시인(장수) / 심연(深淵)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4. 27.

김경수 시인(장수) / 심연(深淵)

-논개

 

 

바람을 걸러낸 눈빛은 진하다

그 눈빛의 심연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향기롭다

당신을 바라보면 행복한 미소보다 눈물이 난다

세상은 온통 욕심을 찾아 헤매지만

그대 안으로 들어온 무수한 삶의 모습들은 가난하다

슬픔의 모든 뿌리가 선이라는 것도 알아야 하기에

보이는 모든 풍경들이 네 안에 들어오면 슬픈 수초가 된다

그래서 촉촉한 물기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흔들림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아버지의 모습처럼

생각을 움츠린 채 길 위를 시적詩的시적詩的걷기도하지

그는 늘 쉬지 않고 심상心象의 깃을 세우며

뿌리가 간결하게 흔들리도록 춤을 추지

춤추는 저 물기어린 투명한 형체의 리듬을 보아라

빠른 물결과 굽이치는 급물살에 생이 휘감기는 곳

그 곳에 몸을 묶고 상구를 돌려 대는 저 유연함에

어린아이가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 숨결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인가를

절박한 꽃으로 피워내는 순간이다

 

 


 

 

김경수 시인(장수) / 도돌이표

 

 

너무 맑다 못해 푸른 기가 감도는

어린아이의 흰 눈자위를 보았다

나도 처음엔 저러했으리

망망대해 뛰노는 바다 빛 어린 물고기처럼

출렁이는 물살에 오선지를 그리고

허리 잘록한 악보를 삼키며

파도를 타던 그런 은빛 물고기였으리

그때엔

체지방 가득 쌓인 뱃살도 없었고

스스로 주머니를 채워야 든든한

빼곡한 명함도 없었으리-

대지의 모체인 흙을 야무지게 포장으로 가장하면서

권리와 의무라는 세상잣대를 세상에 던지고

안과 밖을 응시해야 하는 반박자의 조급함

지나온 기다림만큼이나 흘러간 세월

비대해진 지인들의 명단은

용량 초과로 그 어떤 비경을 연출할 수 없고

다만 벌거벗은 일상의 반복으로

더욱 강화된 도돌이표를 지나오며

옹이진 나이테를 되짚어 본다

 

-시집 <도돌이표> 2009. 문학과 현실사

 

 


 

김경수 시인(장수)

1957년 전북 장수 출생. 1980년 <해변문학> 詩作 활동, 문학평론가. 시집 <미니스커트와 지하철> <사람들은 바람을 등지고 걸으려 한다> <바위풀> <안개바람,안개비> <물꼬> <기수역의 탈선> 등, 한국착각의시학연구회 회장, 창작아카데미 지도시인,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문화정책위원, 한국문인협회 이사, 계간 종합문예지 '문학과 현실' 주간. 제1회 '한국글사랑문학상', 제10회 '한국농민문학상', '제6회 한국문협 작가상'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