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시인 / 생의 한가운데
바람속의 영혼처럼 눈이 날린다
홀로 걷다 돌아보니 나홀로 청년들이 실업에 울고 있다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잠을 청한다 청해도 잠은 안 오고
짙어진 나뭇잎 속에 아슬하게 줄을 치는 거미를 바라보다 중얼거린다
저 줄에도 한 생이 걸려 있구나
나도 그것으로 한 생을 견뎠다
가진 것에 만족하면 행복하다는 말을 믿으면서
행복을 돌돌 말아 너에게 던져줄게
깨어진 뒤에야 완성되는 것 그 거룩을 한 줄로 써서 보내줄게
생의 한가운데는 움푹 패였다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오늘도 어느 곳에선가 뜬구름 잡는 일이 일어나고 다리에 쥐가 난 사람들이 걸어가고
어느날 기러기가 V자를 그리며 낮달을 뚫고 날아간다
그래도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
바람속에 얼굴을 묻고 생의 한가운데를 생각한다
아무튼 성자聖者는 시계를 가지지 않는다
계간 『애지』 2023년 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현숙 시인(동시) / 특별한 숙제 외 2편 (0) | 2023.04.27 |
---|---|
허호석 시인 / 마이산 외 2편 (0) | 2023.04.27 |
안주철 시인 / 노인이 되는 방법 외 2편 (0) | 2023.04.27 |
김경수 시인(장수) / 심연(深淵) 외 1편 (0) | 2023.04.27 |
이혜미 시인 / 하필이면 여름 외 1편 (0) | 2023.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