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순 시인 / 자연의 교훈 앞에
이른 봄 알몸으로 피어난 홍조 띤 벚님의 요염함도 일색이었습니다만 4월이 지나는 길목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연둣빛 싱그러움에 하얀 그리움을 가미한 고고함을 자랑하는 이팝꽃 출선 숲길 아침 햇살 받으며 오늘을 향한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아름다운 세상에 먹칠하는 이 이 맛을 알까
계절에 순응하는 초목 어제의 화려함에 미련두지 않고 새롭게 단장하는 저 푸른 잎새 앞에 털어내지 못하고 비우지 못한 내 부끄러움을 고백해 본 아침 상쾌한 바람 눈이 시리다
하영순 시인 / 12월은
사랑의 종 시린 가슴 녹여 줄 따뜻한 정이었음 좋겠다.
그늘진 곳에 어둠을 밝혀 주는 등불이었음 좋겠다
딸랑딸랑 소리에 가슴을 열고 시린 손 꼭 잡아주는 따뜻한 손이었음 좋겠다
바람 불어 낙엽은 뒹구는데 당신의 사랑을 기다리는 허전한 가슴
하영순 시인 / 12월은
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한 장 남은 달력 속에 만감이 교차한다. 정월 초하룻날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을 설계했을까 지나고 보면 해 놓은 일은 아무것도 없고 누에 뽕잎 갉아먹듯 시간만 축내고 앙상한 줄기만 남았다
죄인이다 시간을 허비하는 죄인 얼마나 귀중한 시간이냐 보석에 비하랴 금 쪽에 비하랴
손에든 귀물을 놓쳐 버린 듯 허전한 마음 되돌이로 돌아올 수 없는 강물처럼 흘러버린 시간들이 가시 되어 늑골 밑을 찌른다.
천년 바위처럼 세월에 이끼옷이나 입히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문틈으로 찾아드는 바람이 차다 서럽다! 서럽다 못해 쓰리다 어제란 명제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가?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경수 시인(대구) / 잃어버린 것을 찾다 외 1편 (0) | 2023.04.27 |
---|---|
김현숙 시인(까치) / 연못에 비친 그 임 외 2편 (0) | 2023.04.27 |
정겸 시인 / 공갈 공화국 외 2편 (0) | 2023.04.26 |
장이엽 시인 / 나는 외 3편 (0) | 2023.04.26 |
이승주 시인 / 십 년 뒤에 만날 사람 외 1편 (0) | 2023.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