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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선아 시인 / 귀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5.

김선아 시인 / 귀인

 

 

 귀인이 나타났다. 가시 없는 희귀종 장미 전문가라 했다. 접근금지 밀실로 모셨다.

 

 평탄한 길인가 맘 놓고 뛰다보면 쐐기풀 섬, 성공가도인가 질러가다보면 설산 잔도. 이런 좌표가 내 오랜 지병이었고 핏줄 찔러대는 가시였다. 귀인은 삼칠일을 기다리라 했다. 무릎뼈 그만 주저앉을 지경이었으나, 나는 탑돌이 하듯 밀실 주위를 빙빙 돌았다.

 

 드디어 삼칠일 되는 날, 뜨거운 접근금지 족쇄를 확 열어젖혔다. 온통 장미꽃무늬와 향수로 얼룩져 있었다. 귀인은 손톱 밑에 숨겨왔던 장미가시로 벽을 뚫고 멀리 사라진 후였다.

 

 무늬와 향수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며 장미꽃을 지켜낸 이는 가시였다. 가시가 귀인이었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4월호 발표

 

 


 

김선아(金善雅) 시인

1955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1년 《문학청춘》으로 등단. 시집으로 『얼룩이라는 무늬』가 있음. 현재 양강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