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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안 시인 / 아홉 살 시인 선언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6.

이안 시인 / 아홉 살 시인 선언

 

 

난 결심했어 시인이 되기로

선생님이 그러는데 시는 아름다운 거래

난 다른 게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이 되겠다는 거야

아름다운 시를 쓰는 사람이

안 아름다울 순 없잖아?

시인에게는 연필과 수첩만 있으면 된대

그게 시인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무기라는 거야

그 둘만 가지고 세상과 맞서는 거지

아름답지 않니?

백 살까지 쓰고도 남을

연필과 수첩을 모아 두었어

나는 나를 아껴 쓸 거야

자면서도 읽고 쓰고 바라볼 테야

글씨는 작을수록 좋아

 

 


 

 

이안 시인 / 구석이 되고 싶은 믿는 도끼

 

 

나를 믿는다면

말리진 않을게

하지만 그전에 알아 둘 게 있어

 

네가 한 손으로 들기엔

난 너무 무거워

한쪽은 뭉뚝하고

다른 쪽은 잔뜩 날이 서 있지

 

딴생각을 하다간

쿵!

발등을 다칠지도 몰라

 

그런데도 네가 나를 믿는다면

난 할 수 없이

구석이 될 수밖에

 

네가 외로울 때

찾아와 서성거리다가 가기 좋은

 

네가 믿는

구석이 될 수밖에

 

-시집 <기뻐의 비밀>에서

 

 


 

 

이안 시인 / 새

 

 

충주시립도서관 옆 잔디밭 구석진 자리에 새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새가 앉아 있다

날개를 아주 부드럽게 폈다

접었다 하는 것이

깃을 다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 먼 곳으로 날아가려고 준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검은빛이 감도는 그

새 곁으로

나는 조용조용 다가갔다

눈치를 챘는가 새가 날개를 접는다

나는 조금 더 몸을 낮춘다

새는 움직일 생각조차 않는다

나는 한 발 또 한 발

가까이 간다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아뿔싸! 커다란 검정색 새는

순식간에 검정 비닐봉지로 변신해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간 걸 후회하며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

검정 비닐봉지가 다시 새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변신은 하루에 한 번밖에 못 하는 모양이었다

다음 날 그 자리에 다시 가 보고서야

나는 내 짐작이 맞았다는 거러 알았다

검정 비닐봉지가 새가 되어서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던 것이다

 

-동시집 <고양이의 탄생>(문학동네 2012)

 

 


 

이안 시인

1967년 충북 제천시 출생.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98년 <녹색평론>에 「성난 발자국」 외 두 편을 발표. 1999년 실천문학 「우주적 비관주의자의 몽상」외 네 편이 신인상에 당선 등단.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 편집위원. 1999. 실천문학 신인상. 시집 『목마른 우물의 날들』 『치워라, 꽃!』, 동시집 『고양이와 통한 날』 『고양이의 탄생』 『글자 동물원』, 평론집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