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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세현 시인 / 거미집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7.

김세현 시인 / 거미집

 

 

거미처럼 그는 허공에 집을 지었다

나는 땅이 튼튼해요 졸랐지만

그는 땅은 너무 낮아 믿을 수 없어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지을 거야

나는 땅에 내려오라 자꾸 달랬지만

그는 뒷걸음치며 허공의 계단을 올라갔다

바람이 불어요

투창 같은 별들이 당신 몸에 박혀요

그가 지은 집은 투명유리처럼 빛을 뿜고 있었지만

허공에 떠 있는 집은 아무래도 무서워

덜덜 떨고 있는 나를

그는 따끈한 구들목에 앉혔지만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삐걱이는 집

창문이 날아다니고

비안개가 온 방을 적시고

발 딛는 자리마다 패인 구름 웅덩이

지상의 불빛에 흐린 눈물 글썽이는데

아! 나는 잠들지 못하고

달의 가슴에 화석처럼 박혀 있다

 

 


 

 

김세현 시인 / 몸이란 감옥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가

입으로 인터넷을 켠다

 

화면마다 사건과 사람이 범람하고

현란한 색깔들이 회오리친다

 

꽃을 향해 일초에 수 백번 몸을 떨어

꿀을 꽂는 벌새

 

관계란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일까

아무도 보아주지 않으면

生 조차도

돌처럼 굳어지는게 아닐까

 

누워서 바라보는 창 밖으로

고드름 같은 슬픔 ,빛을 켜든다

 

가끔 화면 가득,

분홍 숨결이 뜨거워지면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핏빛 욕망이

낯설다

 

 


 

김세현(金世炫) 시인

1954년 대구 출생. 1989년 <죽순>, 1990년 <대구문학>, 2001년 <월간문학>에 시 「가로수」 등이 당선되어 등단. 2018년 첫시집 『립스틱 혹은 총알』을 상재. 사화집 『배추흰나비의 시간』 외 출간. 한국시인협회 회원. 대구시인협회 이사. 대구《물빛》시동인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