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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언 시인 / 빅뱅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5. 29.

김언 시인 / 빅뱅

 

시간이 차곡차곡 채워져서 폭탄에 이른다

일 초는 일만 년의 폭발

순간은 영원을 뇌관으로 타들어 가는 심지

태아는 울고 태어나는 순간

거꾸로 매달린 세계를 고통스럽게 입에 담는다

보지 않는 세계의 보이지 않는 웅성거림과

차가운 열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대기

죽음으로 대변되는 이 검은 색조의

밝은 별을 눈에 담기 위하여

잔해 위에 잔해를 쌓아 올리는 아이는 운다

출발은 멀었고

이미 도착한 이 세계에서 물결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

얼마나 더 올라가야 암흑에 다다를까

방금 전까지 잠잠하던 폭발이

한 점도 너무 넓은 세계를 흔들어 깨웠다

내가 돌아다녀야 할 곳이 아직도 남았다고 믿는

그 세계를

아이 혼자 담겨서 운다

무덤은 멀었고 이미 도착한 요람에서

 

_시집 <모두가 움직인다>에서

 

 


 

 

김언 시인 / 어쩌다가 만났을까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오는 사람을 생각한다. 저녁에 나가서 아침에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둘이 만나는 경우는 아침이나 저녁 이 둘뿐이지만, 만나기는 만난다. 나가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이 인사한다. 둘은 아직 부부다.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다. 다음에는 언제 만날까? 약속을 정하지 않는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오는 사람과 저녁에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만난다. 만나기는 만난다. 어쩌다가 우리는 만났을까?

 

-『내외일보/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2024.04.19. -

 

 


 

 

김언 시인 / 나는 밖이다

 

 

나는 밖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밖이다

속에서 나를 끄집어내는 순간

이 순간에도 나는 밖이다

속의 당신이 속의 나를 후벼파는

이 순간에도 나는 밖이다

속의 당신이 속의 나를 밀어내는

먼저 밀어내는 이 순간에도

나는 밖이다

속에서 우는 당신을

속에서 속에서 찢어버리는

이 순간에도 나는 밖이다

증오가 자라고 독이 자라고

속에 죽음이 가득 차는 순간

이 순간에도 나는 밖이다

이미 밖이다

 

 


 

김언 시인

1973년 부산에서 출생. 부산대학교 산업공학과와 국어국문과 졸업.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졸업. 1998년 《시와사상》에 <해바라기> 외 6편을 발표하며 등단. 시집으로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한 문장』 『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등이 있음. 박인환문학상, 2009년 미당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