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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후명 시인 / 강릉 별빛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6. 2.

윤후명 시인 / 강릉 별빛

 

 

강릉 바닷가에서 별을 바라보는 것은

이 삶을 물어보는 것

이 삶이 지나면

다시 올 거냐고

어느 바다를 지나 다시 올 거냐고

물어보는 것

그러면 별은 물고기가 되어

멀리 헤어가기만 한다

하물며 별은 먼 향내에 빛난다

따라서 강릉 바다의 향내는 먼 별의 모습

우리가 살아 있는 지금을 가장 멀리 빛내는 별의 모습

강릉 바닷가에서 별을 바라보는 것은

지금 살아 있음을 되새기며

이 삶의 사랑을 물어보는 것

 

 


 

 

윤후명 시인 /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이제야 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너무 늦었다

그렇다고 울지는 않는다

이미 잊힌 사람도 있는데

울지는 못한다

지상의 내 발걸음

어둡고 아직 눅은 땅 밟아가듯이

늦은 마음

홀로 #등불 을 #상처 위에 켜다

모두 떠나고 난 뒤면

등불마저 사위며

내 울음 대신할 것을

이제야 너의 마음에 전했다

너무 늦었다 컴컴한 산 고갯길에서 홀로

 

 


 

 

윤후명 시인 / 시를 쓰는 딱정벌레

 

 

거쳐온 인생이 풍경이 된다

자연 속에 서 있는 집 한 채

그 안에 나는 형체 없이 서성거린다

아, 살아왔구나

부끄러운 딱정벌레처럼 웅크리고

시를 썼구나

그 형체가 내가 맞는다면

풍경은 완성될 텐데

서성거리는 사람의 그림자는 붙잡을 수 없다

한 웅큼

내 손안에 쥐여 있는 풀잎을 들고

나는 그림자 속에 딱정벌레의 집을 짓는다

 

 


 

윤후명(尹厚明) 시인

1946년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 본명 : 윤상규(尹尙奎).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 197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빙하의 새』가 당선. 1977년 첫 시집 『명궁』을 출간. 197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역』이 당선되어 소설가와 시인의 길을 병행하면서 단편 『높새의 집』 『갈매기』 『누란시집』을 발표. 시집 『名弓』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먼지 같은 사랑』 『쇠물닭의 책』 『비단길 편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