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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현신 시인 / 기타소리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6. 24.

김현신 시인 / 기타소리

 

 

한낱, 꽃인가

기도인가

 

뼈인 듯, 별인 듯,

선율인 듯, 어깨는,

목이 떨군 천공이

얹혀있는 듯

 

눈, 코, 잎, '늙은 기타리스트'*

머리 - 왼발- 오른발로 이어진

사각엔 성자의

 

날개와 손가락, 그늘 같은 다리,

무거운 눈, 기타를 본다

쭈그린 외다리, 이미창문을 잃

은 풀 같은 소리

 

듀엣곡을 주고받는다

 

기타는 죽었다

외투는 죽었다

 

눈이 먼 기타, 건드리며 지나는 한 줄금, 명상으로 찢어

지는 또 하나의 현,

 

큐비즘으로 번지는 기타소리

 

- 시집 『타이레놀 성전』 에서

 

 


 

 

김현신 시인 / 나비의 아픔을 필요로 한다

 

 

한여름 죽은 나비가 호텔 로비를 날아다닌다

오래전 사라져간 날개이지만

파닥거리는 허밍 따라

작은 화분 속에 고여 있는 향기

잠시 눈동자가 흔들린다

바이올렛이 너무 고마웠다

은빛 상어 떼가 흘러 다니는 여름 하늘

 

나는 덴마크 여행 중이다

칸나 수만 송이를 토해 내고 있는

컬러니 하우스* 창가

햇살 섞인 커피를 마시는

그녀를 본다

하얀 손가락 사이로 피어오르는

나비를 본다

나비의 얼굴은 온통 검은빛이다

 

비슷한 모습으로 완성되는 그녀의 얼굴에

잠시 멈추었다 사라지는

나비의 부재는 붉은 색이다

나비의 탈을 씌워본다

검은 빛으로 빠르게 자라나는

황량한 외계 냄새가 난다

여름 햇살은 나비의 아픔을 필요로 한다

 

* 컬러니 하우스 : 덴마크에 있는 꽃으로 가꾸어진 작은 하우스.

 

 


 

 

김현신 시인 / 페이지

 

 

네가, 돌아올까

 

왠지, 그런 순간, 가시 가득한 선인장처럼, 페이지를 접는 의문은 아닌 것처럼

 

젖은 벽이 흘러나온다

 

아직 멀었을 지평선을 당겨본다 신의 눈빛, 선인장을

선,& 장, 이라고 선과, & , 장, 을 이어본다

 

내 몸으로 비가 쏟아질 것이다

 

난, 페이지에게

 

벽 저편에서

지하터널을 펼칠까, 접을까,

아니, 신은, 죽었다고 , 쓸까

 

입에 넣은 것처럼 , 식지 않은 화염은

페이지로 퍼져간다 모서리에 걸린 한 뼘, 선인장이고

페이지는 섬이고, 빈손으로 뒤덮는

 

너는, 봄비인듯, 구불거릴 것이다

 

몰라, 너의 흰 발목,

 

모래바람에 걸린 페이지들이, 언덕이

점과 선 사이

 

너의, 페이지가 따뜻했으면 좋겠다

 

 


 

 

김현신 시인 / 그 끝에서 깊어지는 것이다

 

 

 거울 속을 두드린다 나는 '가면' 깊은 나를 들고 잠이든다

 

 가까워진 노래도, 나를 가로 막는 모래도, 잠에 빠진 나를 가져간다

 

 흔들린다 공간을 가로막는 나는, 젖어있다 안부가 무거워, 너무 무거워

 

 확장되는 모래가 되라, 모래로 고여라, 비어가는 나는 빠져나온 곳으로 비어간다 감염, 한 순간이 가면을 따라 일어선다 그것에서 빠져나온 가면을 열어라, 가면아 가면을 쓰고 고여 드는

 

 눈물이 있다 잠에 빠진

 

-2022년 제15회 <이상시문학상>-

 

 


 

 

김현신 시인 / 전송

 

 

누군가, 모래언덕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모래와 인터뷰를 하고

내 왼발이 내리지도 않는 모래 비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혼잣말로

취재에 응하는 발자국,

알고 있었나,

 

나는 45도, 경사의 언덕을 사랑했다

낭떠러지를 좋아했다

 

이유 없이 전깃불이 두리번거리고

긴 꼬리 원숭이가 검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미아가 되어갔고

빌딩 사이 강물을 따라 숲으로 갔다

 

그걸 방향이라 불러도 될까,

자꾸만 바람 소리가 났다

 

지평선을 허락하지 않는 맨발이

모래사막을 지나는 중이다

 

사실, 내가 그렇게 속삭였다

 

내 등 뒤로 펼쳐지는 날개 타고

하얀 새털구름을 만지려 했다

 

이렇게, 누군가의 전송은 이어지고 있었다

 

 


 

 

김현신 시인 / 애수 역에서 트렁크를 열다

 

 

저편의 너를 바라보는

 

'트렁크,

 

오늘 비가 내린다 울리는 기적 소리에

나를 울려놓고, 이제 돌아갈 수 있을까?

 

꽃이 떨어지고, 타이어가 멀어지고, 떨어지는 강가에서

악마의 돌다리에 웅크린 예수가 애수로 흘러간다.

 

애수라 불리는 사람들은 또 다시 목마르고 여전히 돌다리에 새겨지는 비,

 

물들어갔네 워털루 브리지, 난간 밖 쏟아지는 모서리,

하얀 미소 떨어지던 봄날에

 

안개, 물집, 캄캄한 음악으로 머무를, 첫 발자국 소리 남기며

 

기적이 울리는 건

나를 지울 수 있기 때문이야

 

몽타주로

담배연기로

 

애수역은 붉어간다

 

 


 

김현신 시인

충남 청양 출생.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2005년 계간《시현실》로 등단. 시집 『나비의 심장은 붉다』 『전송』 『타이레놀 성전』. 동인지 『현대선시』 제10집. 2014년 제5회 시와세계작품상 수상. 2003년 교직에서 정년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