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운 시인 / 밀서
대화를 나누었다 깜빡 눈이 아픈 날 새들은 날아가는 중이라고 나는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말랑하게 부푼 빵을 펼치고 있었다 의 자가 사라지면 사라진 잠이나 이상한 노래 같은 "누가 내 문에 종 을 달아요" 바닥이 보일까 벽 너머 벽으로 타오른 그 밤에서 "잘 될 거야" 잘할 거야" 깡통처럼 울렸다 나는 들리지 않는 사람을 열고 흩어지는 소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종이었다 국화꽃이었다
도로엔 터진 글자들이 다른 문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페이지를 열고
그날 눈부신 역광이었다가 그날 읽을 수 없는 겨울이 오고
홍재운 시인 / 유화가 마르는 동안
색이 퍼지고 있다 다가온 손이 풀어져 내리고 있다 손가락이 들어가 겹치는 동안 재배치되는 SNS가 있고 기하학 피부가 되는사람 빛나는 재킷의 입구들 허물어진 배경이 도착합니다 우리는 거리를 두고 보이지 않는 면이었다 등이 퍼지고 먼저 떠오른 껍질 같아
겹친 날들이 도형을 이루면 첩첩 기다리거나 깊어져
그림자 구석구석 날아가는 휴발입니다 흑과 백 오목한 대각선에서 누구를 향해 열리는지 벗어날 수 없는 밖이었다 비명이었던 손들이 매달려있다 거꾸로 가는 창은 뚫어져라 봄날 같아, 빛나는 몸이었다 고요해진 색을 따라가, 더러워진 벽을, 백색의 가까운 정지를
누군가 또 빈 거울을 이루려 하고
홍재운 시인 / 꽃
도로는 번진다 위험한 허공을 밟고 번진다 붉은 손, 달리는 바퀴에 떠밀려 번져나간다 단단해지다가 돌아보다가 사방이 절벽인 반대편들 소실점이 날아가는 고속도로를 멈출 수 없는 도로는 묻히고 뛰어가고 길 밖으로 피어난다 도로가 빨갛다 도로를 부수며 도로를 빠져 나가는, 터진 내장을 말리는 도로가 일어선다 넘어진 햇살, 도로가 녹아내린다
홍재운 시인 / 설계할까요?
창은 많은 것이 좋을 거야 나는 가로와 세로를 만진다 햇살을 얼마나 조율 할까요? 파일을 펼친다 침실이면 좋겠지 배관을 놓는다 우리는 계속 벽을 밀어낸다 베란다가 담을 넘어갔어요 밖으로 높이 수직의 면을 채색한다 가로와 세로 점점 멀어지는 아이들의 식탁 우리는 다시 가까워지면 좋겠어 창가에 선다 여러 개 또 다시 사과나무를 심는다 문이 없는 현관을 지나 작은 방을, 네 모난방, 네모난 창을, 나는 네모가 만드는 옥상이고 싶어 다용도 속 든든한 선반이고 싶어 돌아서면 다시 모퉁이를 향해 뛰어가는 우리는 이제 시작이야 어디에 누울까 온종일 나는 점선 면이 된다
-시와 반시 2023년 봄호
홍재운 시인 / 사과와 콘크리트
사과가 난다 액자 속에서 보도블록이 빠져나간다 나뭇가지는 사라지고 붉은 콘크리트 속으로 사과가 난다 투명한 걸음으로 햇살 뜨거운 반영이 멈춘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제한 속도를 내려다보고 있다 광장이 되던 소음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와이셔츠와 하이힐들은 자동차는 왜 보이지 않는 걸까 희미해지는 액자와 쌓인 책들, 텅 빈 거리에 서서 날아가는 횡단보도를 바라보았다 그림자들은 더 깊은 표면으로 사라져, 유리창이 빛나고 있었다 아무것도 전달하지 않겠다는 듯 덮인 책들이 쌓여있었다 쌓인 흐트러짐이 없었다 하늘은 날아가고 안과 밖이 동시에 시선을 빼앗기고 밤과 낮이 겹치면 사과와 콘크리트가 자세를 바꾼다면 도로는 아직 도로 위에서 책과 사과의 공간을 사수하고 있다 이탈하는 감각을 전달하고 있다 한 알의 사과 투명한 콘크리트로 날아가는 몸들이 일어서고 있다
-계간 『시와 세계』2034년 여름호 발표
홍재운 시인 / 얼굴
너는 돌이다 지금도 돌이고 돌이라고 불리어지기 전에도 너는 돌이였다 입 다물고 있는 순간에도 비에 젖는 순간에도 네가 나를 향해오는 순간에도 돌 돌이였다 두 손을 내밀며 울고 키스하고 껴안아도 우리는 돌 까다로운 돌 눈 감은 돌이였다 신호등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다시 태어난다 해도 너와 나는 그대로 그저 돌일 뿐이다
-시집 <붉은 뱀을 만나다> 한국문연 2009
홍재운 시인 / 어제의 날씨
물음을 덧칠합니다 가장 뜨거운 초점을 내세우고 마지막은 정면을 선택합니다 생각이 오늘의 생명입니다
속성을 파헤치고 기록이 아닌 기록만이 어제를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필림속에는 차가운 종이만이 의심의 다른 방식만이 "그건 아니야" 중요한 편집이 되어 모여들고 있습니다 호명들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조율이 사라진 음성을, 영혼이 사라진 얼굴, 주먹, 독립적인 그날의 유리파편들을,
작업 중입니다
첫 문장이 어긋난 검색에는 어떤 웃음이 사용되고 있습니까 어떤 언어가 인쇄되고 있습니까
나는 치밀해집니다 치사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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