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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그루 시인 / 후제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7. 15.

김그루 시인 / 후제

 

 

 바지락 캐 오일장 나서는 엄마를 따라 장에 갈 때마다 엄마는 후제를 말했다

 

 운동화도 후제 사주고 꽃무늬 가방도 후제 사주고 장터에서 파는 잔치국수도 후제 사준다고 했다

 

 그 후제가 언제인지 몰라 물으면 후제는 금방 올 것 같았다 아니 후제는 분명 오고 있었으나 도착만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한발 다가서면 한발 물러나는 후제는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해도 나오지 않는 바닥난 물 같았다

 

 엄마의 후제는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이틀 후에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곳에 따라 내린다는 소나기는 후제의 일처럼 빗나가고

 

 후제는 후제의 일이 되어 까맣게 잊었는데 오늘 아침 아들이 신발 사달라는 말에

 

 후제를 말하면 그리움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

 몸살기가 돌 것 같아서

 

 오후에 사러 가자고 했다

 

-2024년 아르코발표지원  당선작

 

 


 

 

김그루 시인 / 묵은 나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식당 주인이

수조에서 건진 광어의

대가리를 단칼에 자르고

 

껍질을 벗긴다

벗긴 살 속으로

칼을 넣어 살을 떼어 낸다

 

얇게

더 얇게

 

얇은 살이 접시 위에 꽃으로 피면

구멍 난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는

차갑고 단단한 기억

 

피도 눈물도 없이 칼질을 한다

뭉뚝한 살은

쌓이고

또 쌓여 하얀 날을 기다리고

 

수조에 낀 물때가 경계를 나누고

 

잘린 대가리와 뼈대는 팔딱이며

바다를 향하면

 

질긴 생의 기억은 진눈깨비처럼

빗금으로 내렸다

기울어진 식당 간판이 내 침묵의 대가리를 자르고 있었다

​​

-웹진 『시인광장』 2025년 7월호 발표

 

 


 

​김그루 시인

1966년 생 본명: 김미옥. 2023 《문예바다》 가을호 신인상 등단. 2024년 아르코 문예진흥 기금 수혜. 대전맹학교 교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