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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그루 시인 / 후제
바지락 캐 오일장 나서는 엄마를 따라 장에 갈 때마다 엄마는 후제를 말했다
운동화도 후제 사주고 꽃무늬 가방도 후제 사주고 장터에서 파는 잔치국수도 후제 사준다고 했다
그 후제가 언제인지 몰라 물으면 후제는 금방 올 것 같았다 아니 후제는 분명 오고 있었으나 도착만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한발 다가서면 한발 물러나는 후제는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해도 나오지 않는 바닥난 물 같았다
엄마의 후제는 한 번도 온 적이 없었다
이틀 후에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곳에 따라 내린다는 소나기는 후제의 일처럼 빗나가고
후제는 후제의 일이 되어 까맣게 잊었는데 오늘 아침 아들이 신발 사달라는 말에
후제를 말하면 그리움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 몸살기가 돌 것 같아서
오후에 사러 가자고 했다
-2024년 아르코발표지원 당선작
김그루 시인 / 묵은 나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식당 주인이 수조에서 건진 광어의 대가리를 단칼에 자르고
껍질을 벗긴다 벗긴 살 속으로 칼을 넣어 살을 떼어 낸다
얇게 더 얇게
얇은 살이 접시 위에 꽃으로 피면 구멍 난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는 차갑고 단단한 기억
피도 눈물도 없이 칼질을 한다 뭉뚝한 살은 쌓이고 또 쌓여 하얀 날을 기다리고
수조에 낀 물때가 경계를 나누고
잘린 대가리와 뼈대는 팔딱이며 바다를 향하면
질긴 생의 기억은 진눈깨비처럼 빗금으로 내렸다 기울어진 식당 간판이 내 침묵의 대가리를 자르고 있었다 -웹진 『시인광장』 2025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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