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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외순 시인 / 탯줄 -거가대교에서
찰싸닥, 손때 매운 그 소리를 따라가면 갓 태어난 핏덩이 해 배밀이가 한창이다 어둠을 죄 밀어내며 수평선 기어오른다
비릿한 젖 냄새에 목젖이 내리는 아침 만나고픈 열망하나 닫힌 문을 열었는가 섬과 섬 힘주어 잇는 탯줄이 꿈틀댄다
당겨진 거리보다 한 발 앞선 조바심을 여짓대던 해조음이 다 전하지 못했어도 짠물 밴 시간을 걸러 마주 앉은 저 물길
황외순 시인 / 토끼와 거북이
눈 덜 뜬 산수유꽃 턱밑까지 기어왔는데 앞만 보고 내달려도 닿지 않는 나의 집 밤사이 아파트는 또 최고가를 경신했다
낮잠은 고사하고 밤에도 껑충껑충 전편과 똑같은 후속편이 어딨다고 부르튼 손발을 꺼내 우화를 털어낸다
길은 여러 갈래 덤불 같은 도회지 달의 뒤쪽에서라도 내일은 싹트는 것 엇박에 꼬인 스텝을 허튼춤으로 피워본다
-《성파시조문학》 2023. 창간호
황외순 시인 / 독심술
집 앞에 새로 생긴 금은방金銀房 라봄봄 하늘대는 플래카드 비싼 값에 금 삽니다 주인이 문 열기도 전 호객 행위 한창이다
얼룩 많은 다가구주택 그 속내를 눈치챘나 공란뿐인 가계부, 하나뿐인 반지라도 딸아이 대학 등록금에 선뜻 녹여 낼 거란 걸
ㅡ계간 《나래시조》(2022, 겨울호)
황외순 시인 / 브라의 감정
어둡고 습한 그늘 수심은 얼마일까 바람의 꽁무니에 햇살을 꿰어달고 안갯빛 보풀이 이는 솔기 앞에 서성인다
방죽을 허물면 물살이 소쿠라진다 눈빛 튀듯 사방으로 길을 내며 흘러간다 침묵 속 발이 저리던 시간에도 혈색이 돈다
황외순 시인 / 작전주作戰株
곁눈처럼 힐끔힐끔 걸음을 내짚으며 금강송 옆구리에 터를 잡는 담쟁이 발밑을 삐져나오는 그림자도 말아쥐고
올라서는 것만이 존재의 허락인 양 바람의 등솔기에 목소리를 숨기고 길 아닌 길일지라도 우연인척 못 이긴 척
눈총이 작살처럼 덜미를 찔러도 무지개빛 이야기를 발판 삼아 굳힌 자리 스텝이 자꾸 꼬인다, 줄기째 시드는 웃음
-《가히》 2023. 겨울호
황외순 시인 / 목 없는 불상앞에서
마지막 잽 날리듯 불끈대는 등산로를 가로막는 질문 하나 풀어낼 길 막막한데 바람의 보호색 같은 독경소리 턱을 괸다
향내가 촉수 뻗어 감싸드는 삼릉골 깃을 치던 한 호흡을 가부좌로 앉혀도 시간은 고삐를 풀어 사잇길로 내닫는다
소나무 그림자를 소나무라 부르진 않아 고집한 목소리를 바윗돌로 눌러놓고 발꿈치 굳은살 같은 이끼나마 우러른다
-《성파시조문학》2023.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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