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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루 시인 / 딸기
잘 들어봐 핵인싸가 될 거야_
무인도에 떨어졌어 음식이라고는 바나나 딸기 포도가 전부 딱 하나만 선택해 아하 바나나를 택한 너 그럼 이제 결과를 알려줄게
넌 셋 중에 바나나를 제일 좋아해 아니라고? 딸기를 제일 좋아한다고? 그건 너의 착각이야 네가 만일 딸기를 제일 좋아한다면 아마도 딸기를 골랐겠지 여기가 무인도라서 그랬다면 더더욱 딸기를 골랐어야 했어 바나나를 고른 건 네 선택의 특수성이지 사랑에 그 특수성을 왜 제외시키는지 모르겠어 그저 달콤하게 선택하는 감정은 결국, 특수한 사정 앞에서 힘없이 버려지지 딸기처럼 자 잘 생각해봐 우리에게는 두 개의 인격이 있어 순간의 감정에 집중하는 인격과 안정을 추구하며 판단하는 인격이
난 바나나를 제일 좋아하지 그런데 왜 딸기를 먹고 있냐고 아 내가 그랬나 그럼 난 딸기를 제일 좋아해 맞아 이건 엉터리 심리테스트야 엉터리 시지
-월간 『모던포엠』 신인상 등단시
강하루 시인 / 마트료시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허기진 열 번째 단숨에 문을 박차며 작은 울림이 들려
최고의 발명은 라면 격하게 머리를 끄덕이는 아홉 번째 요란스럽게 주방을 두리번거리며 눈에 열기를 올리지 물이 끓지 않아도 돼, 면과 수프를 넣고 청양고추로 매콤함을 더해. 고춧가루 한 스푼, 할라페뇨로 매콤함을 더 올려봐
여덟에 드리워진 흥분 분출구가 필요해 웃는 얼굴을 걷어가는 세상, 팔팔 끓는 매운맛을 보고 싶어 구부러진 면발에 마음이 녹아
일곱 엄마는 왜 식사때마다 없는 걸까 열매 맺는 일은 의외로 소소한데 햇빛, 바람, 물 그깟 물 때조차 칼로리가 소모된다면 알람은 어때 그것만으로 은밀한 눈빛 슬로모션으로 넘겨버릴 수 있을 텐데 여섯은 채워지지 않는 허기
어쩌면 아무도 채우고 싶지 않은 허기
어서 일어나지 못해 한 소년이 배고프다고 말하잖아
그다음은 한 소년이 훈제 청어에 먹혀 세 소년이 되었**데 훈제 청어에 사로잡히느니 차라리 잠을 청해! 허기를 덮어줄 거야 내게로 열리는 세상은 일성급 호텔의 미슐랭 셰프를 맞이해
들어봐 어둠이 걷히는 소리 쏴-악 달그락 좀 더 자자 좀 더 백색소음이 퍼지고 있어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1890.9.15~1976.1.12. 영국)의 추리 소설이자 미스터리 소설의 제목으로 ‘10명의 인디언 소년들’이라는 동시에 맞추어 섬에 초대된 사람들이 한명씩 사라지는 이야기(역주) ** 10명의 인디언 내용 중 한 구절
-월간 『모던포엠』 2023년 12월호 발표
강하루 시인 / 여섯 단어* - For Sale ; Baby shose, never won
“아기 신발, 한 번도 신지 않았습니다” 당근! 당근!
쇼핑조아 :‘갓성비 굿, 일단 소장 각’ 신속경찰 : 거래 위치 어딘가요 이쁜언니 : 박스 채 있나요 태그 사진 찍어 주세요 E S T J : 최저가와 비슷, 10퍼센트 할인해 주세요 직딩엄마 : 우리 둘째 첫돌 선물, 해 질 녘 예약할게요
마음을 움직이는 여섯 단어, 나는시인 걸음마 한 번 못 뗀, 되돌아간 너의 세계
시간이 폭군일까요 원고는 불타지 않지만** 낡아 버린 마음은 어쩔까요 세대를 떠돌다 둔탁해진 울림 희끗희끗한 시인의 애꿎은 마음만 속이 탈 뿐
온몸으로 떠나보낸 엄마 몰래 덩그러니 놓인 아빠와 신발 둘만의 인사법, 또 보자
소셜미디어를 여행하는 안내서를 펼쳐보세요 ‘쉬리야 낡지 않은 마음으로 사는 법 알려줘’ -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치솟는 몸값에 화면 속 갇혀버린 시인의 느린 타이핑
“새 시집 팝니다 아무도 읽지 않은” 당근! 당근!
* 팝니다 : 아기신발, 한 번도 신지 않았음 ; 헤밍웨이의 일화로서 그가 친구들과 6단어 길이의 단편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내기를 했고 즉석에서 냅킨에 쓴 이 글은 가장 짧은 소설로서 감동을 안겨줬다고 전해진다.(역주) **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 거장과 마르가리타(미하일 불가코프) 속 대사
강하루 시인 / 오늘은 나의 절기
숲 사이, 바람 분다 사라진 이십사시간은 어디를 떠도는 걸까
한 발 두 발 빠져들며 걷다, 걷다 보니 이곳은 백야 아니 신기루
너를 만나면 숲이 거둬가는 긴장감도 침침한 눈 비비며 하늘 보게 돼 서서히 드리워진 희뿌연 사막 같은 이곳은 회갈색 빌딩 숲
묵직한 울림의 사막 한 롤, 거침없이 펼쳐 내는 스틸 컷 매일이 새로운 정보 눈팅 레벨 업 자격갱신 순차적 이어지는 계산된 만남들 화려한 24시간 불빛 깜빡깜빡 점멸등이 켜진 날 그제야 드러나는 중반을 넘어서는 이야기
생각이 나지 않아 어느 발이 먼저였는지
사막을 건너는 방법이란 지도가 아닌 나침반을 따라가야 한다는, 관념적인 말 따윈 시어로 부적합해 경계 없는 어제가 오늘과 내일을 덧씌우듯 일상을 반복하는 딜레마 무한한 나날 앞에 처음으로 가속도가 멈추는 일
오롯한 이십사시간은 어떤 느낌일까
지루함과 힘겨루는 웅크린 정오 사막 속의 사막 같아
내 그림자와 다이얼로그로 채워보는 틈새 바람으로 흩어지는 풀어헤친 언어같아
지금을 새겨봐, 흔들림의 모든 것이 단서가 될지 한 장의 마디라 명명하고 붉은 절기로 연결해
콧노래를 불러보는 거야
오늘은 처음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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