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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진영심 시인 / 아중저수지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8. 17.

진영심 시인 / 아중저수지

 

 

나는 나뭇가지 모양으로 휜 저수지 물속에서 산다

데크 위로 누군가 걸을 때마다 소리가 들린다

 

물 아래 죽은 사람이 많을 거예요 라는 말소리도 들린다

 

삐거덕삐거덕

발뒤꿈치와 데크가 맞닿을 때처럼 마찰음만 차올라

마음이 저려 올 때면

수면 위로 투둑 튀어 올라 햇살을 움켜쥐곤 한다

 

바람이 불어 물살이 거세어져도

작은 물결들은 바람결을 따라가지 못한다

나는 자맥질을 할 수 없다

 

어쩌면 산다는 건 자연이 자연을 따돌리는 걸 응시하는 것인가

바람과 물이 서로 결 맞추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것인가

 

낚싯바늘로

아가미에 꽃을 달고 싶은 자들이 쫓아온다

물속에서 도망치다가 숨결을 아무리 모아 보아도

심장이 작아진다 아 숨을 쉴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픈지 어쩐지도 잊고 몸속 부레를 떼어 낸다

아가미를 내어 주고 아득해진다

 

저수지 옆 오동나무는

아득함에서 떨어져 떠도는 말간 부레들을 온몸에 새기고 있다

곧 보랏빛 오동꽃을 매달 것이다

 

데크 길 끝으로

계속됩니다 라는 팻말은 어떤 애도도 없이 서 있을 것이다

 

*아중저수지 : 2017년 특성화고 여고생이 현장 실습을 나가 "오늘 콜call 수를 못 채웠어"라는 말을 남기고 투신자살했던 장소.

 

-시집 『생각하는 구름으로 떠오르는 일』 (2022. 05)

 

 


 

 

진영심 시인 / 추탄 1438

 

 

보여지는 여자와 보여지고 싶은 여자가 만나는 지점

그곳이 물이 되면 좋을 거라 여겼다, 여자는

 

어쩌면 강물에 이르지 못했는지 모른다

당신은 여자에게서 물을 느끼지 못하므로

 

여자가 오랫동안 당신과 함께 심은 물의 나무에 있던 것은

뿌리일까 포말일까

 

두 개의 강이 만나면 보게 되는 것이 있다

물의 나무에 앉는 새들, 수많은 사람을 속에 품은 새들

 

새들은 몸을 담궈보다가 머리를 내밀어보다가 물을 박차고

명랑하게 날아간다

 

무연하게 떨치고 날아갈 수 있어서

강물은 나무이고 거듭 나무이고

출렁이는 나무이나

어느 곳에도 다정한 이파리를 내놓지 않는다

 

괴로워하지 않는 새들이야말로

새들 자기 자신이다

정말 자신이고 싶은 자신이다

 

강변을 오가는 이들이 멈추어 서서

오래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새를 가슴 속에 키우고 싶은 사람들처럼

 

그냥 하염없는 것

그냥 하염없어지는 것

 

안에서 흘러내리지도 않고

그득해지지도 않는 그런 것

 

자신에게 다가오라 간절하게 말하고 있다

 

강물은 먼 곳을 가져와 비친다

물속에서 사람 그림자가 찌그러지며 곡선으로 움직인다

여전히 도시 저편에 당신이 있다 물 밖에 직선이 있다

 

누구도 물에 빠트린 적 없는데

스스로 물에 빠진 자가 되어감에

초연해지는

 

그 모든 걸 흘려보내고도

그 무엇에게 버려지지 않는 아름다운

두물머리

 

어디에선가 다시 갈라질지도 모르는

 

*전주의 삼천三川과 전주천全州川이 만나는 지점의 커피숍

 

 


 

 

진영심 시인 / 경사

 

 

뒤집어지지 않으려는 말들이 우산에 부딪힌다

비가 완벽하게 내린다

 

시멘트 바닥엔 길이 따로 없다

빗방울을 이겨 낸다

 

빗방울은 모여지지 않아서

미끄러지며 속내를 적시지 못한다

 

수많은 말을 맞고도 터지지 않는 피부를 위해

잠시 태양을 잊은 것들

 

종자가 티끌처럼 씨방에 숨긴 세계를 향해

소망을 품는

새의 긴 부리 같은 춤사위들

 

양옆 움푹 파인 도랑이 보인다

 

빗방울을 넘어 스스로 깊어지는 물길이 되도록

씨앗을 용해하는 리듬으로 흘러들도록

 

너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직시하는 눈길을 거느리고

너보다 먼저

빗방울을 떠나게 하는

 

높은 길을

누구나 갖고 있다

 

-시집 『생각하는 구름으로 떠오르는 일』에서

 

 


 

 

진영심 시인 / 식탁은 야누스이다

 

 

식탁은 내내

감옥에 갇힌 자의 발목으로 서 있다

때가 되면 움직인다 하루 분 식량을 위해 수십 개의 그릇 무게를

통과하고 있다

 

간수들이 속삭인다 햇빛 쬐려 나오는 운동시간이라고

 

매일매일의 위로이고

파먹히는 식욕이고 즐거운 포만이기도 한

 

공을

발로 차서 띄운다

끝없는 공복을 담아 금의 벌룬을 띄운다

공의 길을 만든다  

 

그 길에 들어서야

배추와 생선은 소금에 절여지고

썩지 않는 육체가 자란다

 

그러나 발목은 황소를 닮아 날카롭게 휘어서

바람 달리는 평원을, 잠들지 않는 고원을 달린다

이야기하는 공과

함께 도달할 곳을 찾는다

 

표정을 짓는 공은

세상 밖에 두고 온 마음

투우하는 여자들이 공중에 던지는 검

 

둥글게 계속 튕겨 나가서

닿게 될 유리알 유희의 세계  

 

더, 더 많은 자신으로 박히며

가슴이 철렁이도록 투명해질 때

목숨은 뛰논다 죄가 없어진다

 

정지와 정지 사이에 있는 장애물 넘기이다, 식탁은

 

-월간 웹진 《님Nim》 12월호

 

 


 

 

진영심 시인 / 벽

 

 

한 번도 표정을 드러낸 적이 없어요 늘 서성거리죠

유리창이나 방문을 담보하기에 방향을 탐내지 않아요

세상을 엿보는 일은 밖의 일이니까요

 

모서리와 모서리로 만나도 날카롭지 않아요 만나야 비로소 직립하니까요

나를 감싼 벽지와 인조대리석은 비밀을 발설하지 않아요

비밀은 차갑다가 뜨거워지는 알몸 시멘트 같은 것이니까요

 

당신은 시계 소리와 한숨, 웃음소릴 모아 차곡하게 채워도 부풀지 않아요

식탁과 침대와 소파와 어울려 구도를 잡아도 소실점이 없어요

나 혼자 흰 가자미와 흰밥을 먹을 때 고요로 어루만져 주죠

 

시시한 걱정과 어이없는 행동과 어쭙잖은 이력이 만든

나의 구불구불한 곡선을 반듯하게 펴주기도 하죠

그렇게 반듯해지다가

정직한 당신 몸을 뚫고 내다 버릴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해 봐요

 

불을 버리지 않은 흰 재

화장을 믿는 흰 얼굴

 

갇힌 절망조차 당신이 건넨 호의겠지만

금 가면서 넘어지지 않아 서로를 닮아갔죠

 

막혀 버린 당신 안에 관管을 뚫기도 했어요

당신 안 내가, 내 안에 나와 비로소 만나려고요

 

끊임없이 당신 안을 엿보면

당신을 통과하지 못한 햇빛이나 바람이 모여 서러워할 때

언제나 당신 안에 있는 것들은 그림자를 늘려 줘요

 

내 그림자 뼈가 자라나도록

 

 


 

 

진영심 시인 / 몽고에서 온 사람들

 

 

노랑색 플라스틱 상자에 가득 책을 넣어 나르다가 속삭인다

그들, 용맹한 기마병임을 숨기고 몽고인들이 속삭인다

 

사장님 당신들 생을 낱낱이 포장하는 일 그것은 무거워요

당신들이 힘들어서 기피하는 일 그것은 이방인 우리들의 몫이지요

 

사장님 베란다까지 사방 벽에 꽉 찬 책들을 얼룩말처럼 세워요

한 마리 한 마리, 접힌 페이지를 펴서 달리는 다리를 만들어요

입마개를 떼고 울음을 터트리게 해요

 

꾹꾹 박은 검은 활자로 풀리는

겉껍질같은 마음에 말달리는 광풍을 불게해요

 

열심히 살지 않아서 그저 살아가는 순한 것들,

얼룩말이나 누떼의 후예들처럼 까만 글자에 말발굽을 매달아

 

사장님 단촐하게 초원을 가져봐요

 

초원을 가지면 눈을 제대로 가지는 걸요 사람 사는 그저 순한 눈동자를

철학책보다 쓸모없어지는 경전보다 깊어지는 그런

멀리서 날아오는 재두루미의 눈을 닮아가는 걸요

 

추적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먹이사슬을 부수는 가젤을 담담히 응시하는 걸요

 

뒤쫓았으나 영양을 끝내 잡지 못한 표범이 다시 그것을 향해 달려가고

다시 달려가게 되는 그 깊은 늪에 대해

알게 되는 걸요

 

검독수리가 그러하듯 훗날 책들의 사체를 모두 다 쪼아서 깨끗하게

흰 뼈만 남겨보아요

 

흰 뼈를 감싼 것은 당신의 양식이 되고

흰 뼈로 남은 것은 희고 부스러지므로

 

검독수리가 남겨주는 초라한 영혼을 품어보아요

 

단촐하게 초원이 하는 일을 상상해봐요

 

푸르른 풀이 흔들리므로

모든 낙망을

고요히 떨어뜨리는 일을

 

그리고

떨어진 낙망 위에

이슬, 그 무게로 덮는 일을

 

 


 

진영심 시인

전북 완주 출생. 전북대학교 대학원 영문과 석사 졸업. 2019년 《시현실》로 등단. 시집 『생각하는 구름으로 떠오르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