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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솝 시인 / 견인(堅忍)
눕지 않는 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누우면 그늘이 뿌리째 뽑히죠. 케냐에 사는 나무들은 누운 자세로 밀림을 만든다지만 슬픔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그늘이 만들어지겠습니까? 아이들은 금지구역 안에 있습니다. 엄마한테 안 가고 학교에도 안 갑니다. 금지구역은 소란스럽고 상업적인 일들이 가득해서 말이 말꼬리를 잡고 다툼이 서로를 전염 시킵니다. 거짓말과 속임수와 비도덕적 신념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감염 속도가 빨라 확진 환자처럼 언제나 고열입니다. 여름은 그렇게 지나갑니다. 나무가 하는 일은 그늘을 만드는 일이고 자신의 발밑에 그늘을 가두는 일뿐이지요. 다시 눕는다면 그늘은 멀리 달아나 버리겠지요. 작아졌다 커지기를 반복하는 그늘, 엄마는 오래 앓습니다. 평생 견디고 있습니다.
김이솝 시인 / 고양이 마임
녹색 지붕이 흰 그늘 속으로 골목들을 쏟아부어요 햇볕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요 구름과 내통하던 하늘은 사라졌어요 분홍 조끼를 입은 허공이 고양이 마임을 즐겨요 네 발을 모아 담장 너머를 바라보기도 하고 갸우뚱 고개를 쳐들고 상한 그림자를 만지기도 하죠 야옹 소리를 듣지 못하죠 고양이는 녹색 그릇 가득 액체로 고이죠 당신이 고양이를 마녀라고 부르는 순간 목소리 안에 앙증맞은 꽃들이 피어나요 햇빛 커튼과 쥐똥나무 울타리 사이 한 번도 울어보지 못한 마임의 방으로 또 한 번 그늘이 출렁이며 들어오네요 그늘을 비틀어 보세요. 날개 사이로 우두둑 눈물이 떨어져요 실체가 없지요 그림자는 당신을 담고 있지 않으니까 고양이 마임을 듣고 있으니까 이어폰과 편광렌즈를 끼고 투명 커튼과 책받침을 눈썹에 매달고 고물고물 피어오르는
야옹
-계간 《시산맥》 201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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