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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노해정 시인 / 능내역 1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2.

노해정 시인 / 능내역 1

 

 

호수에서 피어난 안개구름이

아침 햇빛 감싸는 고요한 마을

 

산 그림자 오가는

삼각 지붕 역

 

수면까지 내려온 키 낮은 구름

기차처럼 호수에 맞닿아 올 때

 

산딸나무 빨간 열매 가을 반기며

모든 계절이 출발하는 역

 

 


 

 

노해정 시인 / 능내역 2

 

 

낚시가방 짊어진 아버지 따라

주말마다 계속된 열두 살 여행

 

능내역 플랫폼 나서자마자

술떡 파는 할머니 빛나는 눈빛

호수에 줄배 오갈 때마다

물 내음 풍겨오는 강나루 길목

 

그날의 향기가 나를 불러도

무심코 외면하던 텅 빈 발걸음

 

아버지의 날들이 지나갔어도

 

수많은 물방울

강물 이루고

모든 마음 조각 딛고 딛어

오늘이 섰네

 

지금은 기차도 다니지 않고

바래 가는 파란색

삼각 지붕 역

 

 


 

 

노해정 시인 / 드디어 상어가 되었다

 

 

머리 꼭대기까지 피가 몰리고 화끈거리며

가슴은 차디찬 얼음장처럼 변해가는

나를 보았지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을 때

마치 빙벽 속에 갇힌 것처럼

뜨거운 핏줄기는 꽁꽁 얼어가고

납덩이보다 무거워진 머릿속

겹겹이 쌓인 빙판을 뚫고

깊디깊은 심해 속으로 내 몸을 끌어들이지

깊은 곳에서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숨 쉬게 되고

매우 느린 속도로 몸을 계속 움직일 수 있게 돼

가라앉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야

그냥 그렇게 움직여지는 거야

심해의 바닥에 도달하는 것은

세상을 등지거나 삶을 포기하려 하는 것도 아니야

엄청난 수압에 짓눌리면서도

견뎌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면

오히려 가슴이 뭉클해질 거야.

어느 순간

상어가 된 나를 느끼게 돼

“ 양식장에 갇힌 철갑상어가 아닌 북극해에 사는 상어 ”

떠오르다 보면

나와 같은 모습을 한, 무리를 만나기도 해

나의 친구일지도 애인일지도 부모일지도 모르는

저들의 유영은 늠름하고 아름다워

계속 떠오르다 보면

싱싱한 피 냄새도 느낄 수 있어

“ 물개를 사냥하는데 정신이 팔린 북극곰 ”

서서히 다가가 턱을 크게 벌려

꿀꺽 삼킬 수도 있지

 

대박이지?

 

나는 상어가 되었으니까

 

-웹진 『시인광장』 2024년 7월호 발표

 

 


 

노해정 시인

1968년 서울에서 출생. 본명: 노경래. 서정시학 100호 2023년 겨울호, 「이문동 도루묵 지붕」 외 2편으로 신인상 수상하며 등단. 현재 휴먼네이처 대표, 서정시학회 동인, 주역과 명리학 연구가, 시사랑 문화예술 아카데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