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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해정 시인 / 능내역 1
호수에서 피어난 안개구름이 아침 햇빛 감싸는 고요한 마을
산 그림자 오가는 삼각 지붕 역
수면까지 내려온 키 낮은 구름 기차처럼 호수에 맞닿아 올 때
산딸나무 빨간 열매 가을 반기며 모든 계절이 출발하는 역
노해정 시인 / 능내역 2
낚시가방 짊어진 아버지 따라 주말마다 계속된 열두 살 여행
능내역 플랫폼 나서자마자 술떡 파는 할머니 빛나는 눈빛 호수에 줄배 오갈 때마다 물 내음 풍겨오는 강나루 길목
그날의 향기가 나를 불러도 무심코 외면하던 텅 빈 발걸음
아버지의 날들이 지나갔어도
수많은 물방울 강물 이루고 모든 마음 조각 딛고 딛어 오늘이 섰네
지금은 기차도 다니지 않고 바래 가는 파란색 삼각 지붕 역
노해정 시인 / 드디어 상어가 되었다
머리 꼭대기까지 피가 몰리고 화끈거리며 가슴은 차디찬 얼음장처럼 변해가는 나를 보았지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을 때 마치 빙벽 속에 갇힌 것처럼 뜨거운 핏줄기는 꽁꽁 얼어가고 납덩이보다 무거워진 머릿속 겹겹이 쌓인 빙판을 뚫고 깊디깊은 심해 속으로 내 몸을 끌어들이지 깊은 곳에서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숨 쉬게 되고 매우 느린 속도로 몸을 계속 움직일 수 있게 돼 가라앉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야 그냥 그렇게 움직여지는 거야 심해의 바닥에 도달하는 것은 세상을 등지거나 삶을 포기하려 하는 것도 아니야 엄청난 수압에 짓눌리면서도 견뎌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면 오히려 가슴이 뭉클해질 거야. 어느 순간 상어가 된 나를 느끼게 돼 “ 양식장에 갇힌 철갑상어가 아닌 북극해에 사는 상어 ” 떠오르다 보면 나와 같은 모습을 한, 무리를 만나기도 해 나의 친구일지도 애인일지도 부모일지도 모르는 저들의 유영은 늠름하고 아름다워 계속 떠오르다 보면 싱싱한 피 냄새도 느낄 수 있어 “ 물개를 사냥하는데 정신이 팔린 북극곰 ” 서서히 다가가 턱을 크게 벌려 꿀꺽 삼킬 수도 있지
대박이지?
나는 상어가 되었으니까
-웹진 『시인광장』 2024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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