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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기범 시인 / 용접공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6.

이기범 시인 / 용접공

 

 

나 한때 용접공

 

고열에 철이 녹는 것을

면 너머로 보았던 용접공

빈틈없이 쇠와 쇠 사이를

메우던 용접공

전기 스파크를 이용해

쇠의 간격을 없애던 용접공

저리 강한 것도 저리 딱딱한 것도

눈물처럼 흐르게 하는 용접공

굵은 땀방울 마스크 속에서 흥건해지도록

찢어지거나 터져버린 것을

붙잡아주던 용접공

십여 일 붉은 꽃

눈 속에서 피우고 군락을 이루고

미닫이문 닫히는 소리가

눈 깜빡일 때마다 들리는 용접공

저녁이

무르익을 무렵

분유통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상한 용접공

 

그러나

아내여

난 여전히 당신 가슴에서

주체할 길 없는

봄날

 

 


 

이기범 시인

1966년 전남 담양에서 출생. 1994년 근로자문화예술제 시부문 당선. 2002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 『땅속의 방』 『청설모와 놀다』. 현재 〈빈터〉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