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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수채 시인 / 나의 네네트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7.

한수채 시인 / 나의 네네트

 

 

 옷을 벗고 거울 앞에서, 조금은 마른 자신의 몸을 보는 네네트.

 가는 허리를 부드럽게 잡아주고 엉덩이에서 떨어지는 치맛자락이 바람처럼 가볍다. (얼마 전 내가 골라 준 원피스)

 

 내일이면 사내의 손과 혀가 지나가게 될 몸,

 울다 지쳐 잠든 흔적도 자연으로 남아야 할 몸이기에

 좀 더 대범해지는 몸

 

 이쁜 종아리를 보며

 사랑하지 않으면서 좋아하고 섹스하려면 얼마나 더 단단해야 하는지를,

 드디어, 아무것도 아니게 된 신성함 대해 생각했다.

 

 작게 말했지만, 울림통처럼 울려 퍼지는 네네트

 “그는 내가 정숙한 여자이기를, 어쩌면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여자이기를 바라지만

 오, 불쌍한 사람,

 내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정숙함을 쓰레기처럼 버리고 싶었는지 안다면…

 오, 불쌍한 사람”

 

 네네트는

 미움보다 사랑이 더 오래간다는 헤밍웨이의 말에 공감할 수 없다며

 깊고 푸른 눈으로 담배를 다시 물었다.

 소녀에서 갑자기 경험 많은 여자가 된 것 같다고 좋아했고

 나는 우울해졌다.

 

 그녀의 바람 같은 실루엣을 감상하며

 그와 그녀의 싱거운 결말에 싱거워하고 있을 때

 “너는 너만 사랑하는 사람이야. 나는 그런 너를 사랑해”

 

 우리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네네트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러기 위해 창녀와 수녀를 넘나들어야 한다면, 그리고 각각 악마와 천사의 날개를 달아야 한다면, 그렇게 내 영혼과 육체의 음흉하고 비밀스러운 거래를 눈감아야 한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 그렇게라도 철저하게 영혼과 육체를 분리할 거야 -할 수만 있다면- 그 후에 무엇이 남는지, 미련하게 영혼과 육체가 서로를 두고 시험하는 일을 피하지 않을 거야.

 

 네네트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것은 쾌락도 문란도 아닌 개화의 아름다운 징조였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꼿꼿하게 시들어가고 있다. 갑자기 식욕이 솟구친다. 팽창하는 숲의 호흡으로 온몸을 열고 나무처럼, 하늘처럼, 구름처럼, 발아래 작은 풀들처럼 나를 먹고, 나를 먹어 치운 발바닥 젖은 흙처럼, 흙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벌레들처럼 섹스하고 싶다. 은밀한 그곳으로 내려가고 있는 나의 손이 뿌리 곁으로 뻗어가는 이 하루가 생의 마지막 오늘이라면 글 따위로 허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우리는 우리를 아주 지웠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8월호 발표

 

 


 

한수채 시인

2003년 <우리詩>로 등단. 시집 『싶다가도』 『내 속의 세상』 『그대에게 가는 길』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