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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류인순 시인 / 가을 산책길에서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11.
류인순 시인 / 가을 산책길에서

류인순 시인 / 가을 산책길에서

 

 

가을 산책길에

마실 나온 건들바람

은행나무 툭 건드려

나비처럼 팔랑팔랑

노란 비 뿌려 주니

 

그 옛날 학창시절

책갈피에 묻어 둔

곱디고운 추억이

배시시 웃으며

가슴에 와락 안기네.

 

 


 

 

류인순 시인 / 내비게이션

 

 

쉽게 알 수 없는

미로 같은 길 뚫고

그대에게 가는 길

 

앗, 이런

잠깐 한눈팔아

경로 이탈했네

 

정신 줄 다시 잡고

재탐색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나의 최종 목적지

사랑하는

그대에게 가는 길

 

 


 

 

류인순 시인 / 가을, 너를 부른다

 

 

갈색 그리움이 창가에 서성이다

마시는 찻잔속으로 똑 떨어지고

깊숙이 묻어둔 사연 한 줌

구절초 향기 안고 그네 탄다

 

풀잎향기 서린 뒤뜰엔

제풀에 지친 뙤약볕이 힘없이 드러눕고

한여름 내내 실눈 뜨고 있던 귀뚜라미

청아한 선율로 목청 높인다

 

하늬바람 소풍 나온 하늘가

양떼구름 새털구름 모여

쪽빛 도화지에 하얀 붓 터치로

화려한 그림 솜씨 뽐내고 있다

용을 그렸다가 여우를 그렸다가

 

미루나무 은빛으로 잠드는 밤

밤송이 달빛 먹고 속살 찌우고

감나무가지 사이로 지나는

건들바람의 부드러운 애무에

풍요를 꿈꾸는 풋감들이

살짝 볼 붉힌다.

 

 


 

 

류인순 시인 / 사색의 향기

 

 

빛 고운 햇살에

잎새들의 수군거림 시작되고

골짜기 낙엽 위 잔설이 녹아

꿈꾸는 개구리 등 적신다

 

몸 품은 계곡물

청아한 노랫가락 실어

마을로 내려가면

개울가 버들강아지

하얀 텰모자 갈이 쓰고

해맑게 손 흔들고 있다

 

햇살의 달콤한 간지럼에

실눈 뜨는 꽃봉오리 툭, 툭

잠긴 단추 살며시 풀고

수줍은 미소 짓는 바람이

 

쉬어가며 속삭인다

마음이 설레지 않느냐고...

 

눈부신 봄날

명주바람이 쪼르르 달려와

입술 훔치고 간다

 

 


 

 

류인순 시인 / 청보리

 

 

초록빛 물감 풀은

여름 언저리 들판

꿈과 사랑이 자라는

파릇파릇 청보리

 

부드러운 바람결에

까슬한 얼굴 감싸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춤사위로 노닐며

 

볕 좋은 들판에서

햇살 야금야금 먹고

푸른 꿈 튼실하게

알알이 키우고 있다

 

 


 

 

류인순 시인 / 아카시아꽃

 

 

장대비 내리던

오월 호숫가

코끝 간지럽히는

활짝 핀 아카시아꽃

 

비 젖었다고

그 향 사라질 리 없는데

뭇사람들

눈길 없이 훅 지나가고

 

빗속에서도 그 꽃

진실한 향기 머금고

옹골진 사랑 하나

방실방실 키우더라

 

이젠 너를 볼 때면

가던 길 멈추고

눈 맞춤 한 그 행복

우르르 쏟아지겠다

 

 


 

 

류인순 시인 / 산다는 건

 

 

겨울 한파 몰아쳐

온 가슴 꽁꽁 얼어

죽을 것만 같았는데

 

내 안에 단비 내려

새순 돋아나는

연둣빛 봄이 오네요

 

그래서 또 이렇게

숨 쉬고

한세상 사나 봐요.

 

 


 

류인순 시인

경남 진주 출생. 아호: 가향. 울산과학대 졸업. 작사가. 세계문인협회 이사. 2012년 월간 '문학세계' 등단. 세계문인협회 이사. 천우미디어그룹 운영위원 & 기획사 소속 작사가. 2015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시 부문 본상 수상. 시집 '바람소리 그리운 날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