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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봉선 시인 / 애가哀歌타령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9. 18.
문봉선 시인 / 애가哀歌타령

문봉선 시인 / 애가哀歌타령

 

 

1

아귀수육의 절정은

참기름뭉치처럼 입에서 살살녹는 '애'

'애'는 생선간을 일컫는다

 

내륙에선 쉽게 먹지 못하는 귀한 부위

냉동시키면 '애'는 금세 푸석푸석 상한다

'애'를 빼면 고기맛 영 파이다

 

2

애.애 사는게 대수니

애정으로 살지

'애'는 빼고 정으로 산다고 덧보태며

방바닥 길게 등대고 사는남편

등만 기대고 사는 아내

멍으로 미어진다는 푸념에

 

애개개, 애는 뺄수가없지

더하지나 말지

애를 만들지나 말지

애간장 녹여

애를 낳고, 애를 빼

애를빼면 나쁜 엄마지

 

볶이고 다치고 하다 애가 다 녹아

애지중지 애지도록 애쓰는 일밖에 더 있어

사는 게 애를 빼면 산목숨 아니야

애창자 아껴 애고 애고 돌보다

애걸복걸 마디마디뼈 끓이고

에워낸 애를 돌리도....

 

-시집 <꽃핀다> 中

 

 


 

 

문봉선 시인 / 이불이

 

​봄이불을 털었다

가슬가슬 가생이 터져 낡은 이불깃의

민들레솜 햇살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시린 발 다독여 주고

허물을 덮어 주다가

제 몸이 다 헐어버렸다

제 혼이 다 빠져버렸다

 

 


 

 

문봉선 시인 / 산마를 다듬어

 

 

흐물흐물 허물많아

버릴까 말까

 

우퉁부퉁곰보딱지 튀어나와 밉상인

산사막에서 뭉떡뭉떡걸어온 산마를

좋이 들여다 본다 진흙 털어내며

 

몸이 좋아한다는 말씀을 들었다

우툴부툴 흉악해진 속을 다스린다는 말씀으로 읽었다

탈이난 위를, 볼거못볼거 언짢아 쾡긴마음 다독여 다스린다는걸

씻고 다듬어 통째로 갈아 미끈미끈 마 뽀얀즙을

입술로 받아 젖가슴으로 안으면

 

허물이 조심씻은듯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나를 평안케 달래는 그가

나를 보살피네 햇보살이네

 

허물많아 버릴까보냐

흐물흐물

 

 


 

 

문봉선 시인 / 하늘마당

 

 

바람햇빛 무심히 놀다 간 자리

대문없는 저넉마당에 들어서면

 

회초리로 변하는 싸리빗자루 들고 달빛이

마당 구석구석을 쓸고 있다

골목골목길 어구까지 쓴다.

 

빈 쭉정이

열매맺지 못한 가지들과

발자국 위로 떨어진 말씀들을

무신 까닭으로 할배는

무시로 바람비질만 하시니껴

 

내가 잠깐 빌려 앉은 땅 한마지기

내가 영영 빌려 누울 땅 한평에게

빚끌어다 쓰는 마음이제

이자 갚는 마음이제

 

할배는 지금

어느 하늘마당 쓸고 계실까

어느 하늘창을 닦고 계실까

 

 


 

 

문봉선 시인 / 아, 이게 싸리 꽃이구나

 

 

하얗게 흔들리며 무르익는

쌀 튀밥

몽글몽글 피어올라

고봉밥 떠오르게 하는

 

가슬걷이 가뭇없던 아버지

빗살처럼 여윈 가년스런 딸에게

매로 주신 회초리

 

언덕 보리밭가녘

싸리 꽃 제 마른가지 꺾어

쭉쭉 키가 자라고 마음 자라더니,

 

회초리 한 번씩 휘어질 때마다

아름달착진 쌀밥

펑펑 쏟아지는 아, 쌀눈 꽃

 

 


 

문봉선 시인

1962년 경북 대구 출생. (문봉순).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동국대학교문화예술대학원 시창작 석사. 1998년 <自由文學>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독약을 먹고 살 수 있다면」 「진심으로 진심을 노래하다」 「꽃핀다」 「꽃들의 강물」. 한국시인협회 신인상 수상. 과천율목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과천문인협회 전 회장. 전 기초의회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