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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일 시인 / 송이맞이풀꽃
백두대간 등솔기 초가을 햇살 오대 설악 가파른 칠팔부 능선 어디쯤 간밤 꿈자리가 맞았나 송이밭이 벙글었네
묏부리엔 한자락 새털구름 휘파람 새소리 일능이 이송이 삼표고 부자간 고부간에도 쉬쉬 한다는 금따는 송이밭엔 이삼십년생 적송(赤松) 덤불 싱싱한 밑동을 유리태자 신표(信標) 찾듯 심마니가 헤집네
낱송이 줄송이 마당송이 방석송이 어라, 저것 좀 보게 옹알이 하며 제손 빠는 앙증맞은 조막손 저요, 저요 유치반 코흘리개 기특한 주먹손들
송이밭에 다소곳한 송이맞이풀꽃 무리 연분홍 알싸한 향에 취해 아이구야, 주체 못할 춘정으로 솔가리 홑이불 들추는 물오른 남근들
그로부터 수줍은 풀각시 첫정에 바람나서 줄송이 맨앞줄에 치어걸로 나섰다가 방석송이 젓가락 장단에 뽕짝으로 날렸다가 마당송이 굿판에 불루스로 돌았다가 어느날 스타탄생 팡파레에 채홍사에 스카웃된 송이맞이 풀꽃들이 오늘은 완월동 유리성에 오두마니 앉아 송이송이 기다리네
달구경하다 못다 핀 한떨기 망부석
손해일 시인 / 낮달
“아빠, 또 술 먹었제?” “그러다 병날라구 그래?” “아이구! 내가 못살아 정말”
낮달에 취한 해바라기에게 어린 종다리가 재재 발랐다
서녘에 기우는 손톱달 마중 나온 개밥바라기별
손해일 시인 / 고슴도치의 사랑
고슴도치도 제새끼는 귀엽다지만 껴안을수록 아프구나 남북분단 50년 통일과 화합을 앞세우고도 이념의 날선 가시 속절없이 상처받는 고슴도치의 사랑
서로를 갈구하면서도 젖은 숲 덤불에 웅크린 채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자존의 눈싸움 미움이 깊어질수록 어쩌자고 자꾸 그리움만 쌓여가네
이정표를 스쳐가듯 자꾸만 멀어지는 뒷모습에 우리 이제 피흘리지 말아야 하리 번뇌를 삭발하듯 가시를 접고 비무장지대 황토밭 고랑이나 무성한 억새밭에 한바람으로 섞여도 좋으리
손해일 시인 / 달맞이꽃 햇살이 눈부셔 밤을 가려 핍니다 달무리 걷힌 뒤 바자울 사립을 열고 서성이는 까닭도 외로움 때문만은 아니외다 청솔가지 참대밭 엮어 달집을 지어 놓고 월궁 항아 고운 님 맞으러 동구 밖에 섰습니다 은잔에 술을 따르듯 정화수 한 사발을 서낭당에 받쳐 들고 아무에게도 보인 적이 없는 은밀한 사랑을 비춰봅니다 三界의 인연으로 우리는 만났거니 내 가슴 달집 쏘시개에 불은 당신이 당기소서 달이 뜨면 드리리다 唐草紋 자리 펴고 이 마음 다 드리리다 *항아(姮娥) : 달 속에 산다는 전설적인 美人.
손해일 시인 / 흐르면서 머물면서 아래로 더 아래로 낮은 음자리표가 흘러간다 누가 부질없다 하리 만상이 흐르는 융융한 일렁임을 여울목에 좌초된 혼 더러는 거품으로 스러지고 더러는 앙금으로 가라앉고 더러는 수렁속에 썩고 있지만 무심한 버릇으로 흐르다 보면 머무는 것 또한 어려운 일 빛나는 아침의 출정에도 빈손뿐인 귀로 나 아닌 나를 만난다 수없는 자맥질에 우리의 물배는 얼마나 부르고 맨살은 얼마나 부르텄던가 잠시 눈 감으면 잊혀질 것들을 위하여 우린 또 얼마나 흘러가야 하는가 하릴없는 뗏목처럼 뗏목처럼
손해일 시인 / 바람개비
속소리나무 숲 칙칙한 어둠을 따라 눈발 속에 날아간 당홍연
바람독에 서서 강강한 바람을 맞는다 마파람 높새 된새 하늬하늬 하늬바람 무상한 너의 변신
너 없이 내가 바람개비일 수 없지만 너를 거스르지 않고는 돌지 못하는 모순의 나
바람난 바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꽃물 같은 생채기만 혓바늘로 돋는다
머무르고 싶지만 바람개비 역마살
오오 누가 나에게 청청한 바람을 다오 나도 한 줄기 힘찬 흐름이 되어 정녕 누군가의 바람개비를 돌리고 싶거니.
손해일 시인 / 사향사(思鄕詞)
박꽃지붕 삼삼한 맷방석만한 한가위 달 멱서리 삼태기에 풋밤이랑 햇감이랑 도리깨질 타작마당 탕건 바람에 맨 상투로 튀던 콩깍지
동치미 국물에 잇몸시린 겨울밤 질화로에 알밤은 익어 폭죽으로 터지는데 동구 밖에 묻어오던 목화송이 함박눈 분분한 싸락눈
母性의 달디단 젖 다 빨리고 쭉정이로 누운 들녘
손해일 시인 / 섬 안의 섬
늘 섬 하나 품고 산다 내 안에 있어도 그리운 섬 닿을 수 없는 모래톱에 물새 발자국 하나 달랑 찍고 꿈결에 다녀온 섬위 턱구름 *건들마에 메밀꽃 잔물결 일다 내 안에 있어도 닿을 수 없는 곳 무의식의 심층 나도 모르는 나
*건들마 : 초가을 남쪽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건들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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