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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동우 시인 / 맹목(盲目)
깜깜한 하늘을, 적막한 허공을 향해 우주 망원경 렌즈를 돌려 살펴보자는 사람이 있었다
농원을 빠져나온 사람들이 어쩌면 저렇게 붉을 수 있느냐고 눈물이 날 만큼 장미가 예쁘다고 감탄하며 떠들 때 흡수할 수 없는 빛이 반사되어 장미가 붉은색으로 보일 뿐 본래 어떤 색일지는 알 수 없다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혼잣말을 중얼대던 사람이 있었다
강을 건너며 악어에 물려 죽는 누우 보다 뒤따르는 동족들에 밝혀 죽는 누우가 수백 배 많다는 걸 알았을 때 진실과 사실과 현상의 세상에서 현상을 지나 문득 어딘가에 이르렀을 때 가늠할 수 없는 힘이 두려워 무릎을 꿇는 사람들이 있었다
깜깜한 허공에서 드러난 건 셀 수도 없는 은하와 별들, 어쩌면 볼 수 없었다기보다 보려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웹진 『시인광장』 2025년 7월호 발표
원동우 시인 / 골디락스*
염소 닮은 구름이 떠 있고 평생 뜯어 먹어도 모자람 없을 초원과 따뜻한 사막에 꽃이 지천일 게다 바다가 강이 되어 물고기떼 키우는 그 별에선 생긴 대로 일생을 보내는 돌들과 돌을 깔고 잠드는 숲의 나무들이 아침이면 안개를 뿜어댈 테지
누군가 숨어 살 게야, 그 별에도 시인이 태어나면 우물 하나씩 생기는 마을에 오래된 동전이나 화병을 파는 가게가 있을 테고 사람을 하늘이라 부르는 순한 노인들이 동굴 벽에 새겨 놓았겠지 한 사람이 조용히 죽어갈 때 천공의 은하도 빛을 잃는다는 전설
아직은 숨어 있거라 너라는 별, 초라한 사내들이 일터로 몸을 내미는 새벽 자전을 멈추고 네 그림자에서 나오지 말아 다오
다행이다, 고마운 말을 적을 수 있도록 속지를 지닌 세상의 모든 책처럼 제 맘대로 찬바람 부는 길 위에서 첫차를 기다리며 하늘을 보는 우리처럼 사람을 그리워하는 누군가 어느 별엔가 있으리라는 위안 누구도 갈 수 없어 아직은 꿈이라 불리는 너, 골디락스여
*골디락스: 지구와 유사한 환경의 우주 어떤 별.
원동우 시인 / 종말론
이것은 천국에 관한 이야기다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빵 광주리와 몸을 열어 길을 내주었던 붉은 바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부활했던 구세주와 두드리면 열리리라, 기도마다 응답하던 문
이것은 오래된 천국의 이야기다
전철역 기둥 사이 마법학교 출입구를 찾던 소년과 하혈하는 밤마다 수태고지를 기원하는 소녀 소년이 남긴 컵라면과 소녀의 신발 깔창 생리대 폐를 잃고도 숨을 쉬는 우리 앞에 이천 년은 더 기다려야 길이 열릴 검은 바다
이것은 비닐로 포장된 진열장 속 천국의 이야기다
원동우 시인 / 다산(茶山)의 비석에 기대어
종(鐘)이 할 수 있는 일은 공중을 떠도는 소리의 심지에 불을 댕기고 온몸을 던져 암흑을 불 지르는 것 스스로 불덩이가 되어가는 것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날아오는 돌팔매 미동 없이 맞으며 광물성의 웅크림으로 거친 입김 감추는 것
원동우 시인 / 묵시록 2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날 화분 꽃은 죽어 있었다 화장장으로 식구 하나를 밀어 넣을 때의 느낌처럼 불의 터널 앞에서 존재들은 무게를 잃는다고 꽃 관을 받쳐 든 내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날부터 악몽은 시작되었다
아이의 윤곽선이 남아 있는 동네 큰길 바닥을 장맛비를 맞으며 폐지를 고르는 노파의 등을 꽃들이 스스로 제 목을 뚝뚝 떨구는 모습을 이 빠진 검은 칼로 손목을 내리치는 상황을
관에 누운 듯 잠들 수 없는 날들이었다
난간 근처 그늘에서 화분이 움직인 건 새벽이었다 마른 흙을 뚫고 잎 하나가 몸을 밀어 올렸다 두려운 일이었다 희망이란 얼마나 뜨거운 악몽인가 화분 앞에 서서 내가 말했다 던져 버려야 한다
무거웠다 온 힘을 다해도 들 수 없었다 쪼그려 앉아 관에서 핀 잎을 보는 내가 눈물인지 땀인지 쩔쩔매고 있었다
원동우 시인 / 진짜와 가짜의 차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새삼 충격받을 정도는 아니다.
고백하자면 나같은 무명도 등단 지원을 요청받은 적이 있다. 애초에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럴 힘도 없다.
황금빛을 낸다고 모두 순금이 아니고 반짝인다고 모두 다이아몬드가 아니듯이
고상하고 이질적인 사람으로 사랑받는 시인이란 사실 가난하고 비겁하고 나약하며 무책임한 인간형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시인 직함을 얻을 요량이면 당신이 그런 처지인지 돌아보길 바란다.
먹고 살만하고 희망에 가득찬 일상에다 명함에 시인이라고 꾹 찍으면 더 없이 괜찮은 거시기 아니겠어? 라는 생각이 든다면...
안타깝지만 당신은 가짜니까.
원동우 시인 / 사표 혹은 일상이 하늘의 터널을 지날 때
1 아내와 아이와 몇 가지의 카드 대금과 추진중이던 서너 개의 광고 프로젝트 연말인사를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동료들과 상사의 얼굴에 버짐이 가득하다
2 점심을 먹으러 여의도 백화점으로 백상빌딩이나 조금 멀리 홍우빌딩으로 줄 서지 않는 밥집을 찾아가곤 했다 홍보실의 이승재는 총을 맞은 혈흔처럼 가슴에 부대찌개 국물이 묻어 있었고 껌을 씹으며 무잇인가 무엇인가
무엇인가 씹을 것을 찾아서 샛강 쪽으로 흘러가는 점심 한때의 하늘 날카로운 브레이크를 밞곤 하는 차들과 장대로 낙엽을 터는 미화원의 낡은 운동화를 길가에 말라붙은 붉은 토사물에 머무는 내 시선의 끝을 거둬 들였다 망설임도 없었다
무엇인가를 씹으면서 눈을 감을 때 차라리 보이지 않는 것들의 내면을 꿈꾸고 있을 때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눈 속에 내가 있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3 개가 죽어 있었다 드림랜드 앞길의 건설목을 지나는 차들과 노인들과 아이들 그 시선의 사각에 개가 누워 있었다 털이 젖은 채 죽은 개를 보고 사람들은 비가 왔나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를
생각할 틈도 없이 종암동 쪽은 막히고 미아리 고개에는 고장난 버스의 영향으로 차간 거리 좁혀져 있는 아침 출근길
세종문화회관 앞길과 정동과 아현동 마포 경찰서 앞길에서 그 젖은 개가 지하철 공사로 막히는 길, 아 마포대교 언덕길 내 망막 속에서 죽어 있었다 한강으로 죽은 개들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4 마포3대교 건너 쌍둘이빌딩 옆 죄회전 길을 따라 내려오면 증권거래소에서 백미터쯤 떨어진 곳에 나는 주택은행 본점 앞에 있었다
갑자기 시베리아 찬 고기압,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들이 나를 둘러싼 대기의 허름을 얼게 만들고 건물들의 유리창이 얼었다 숨쉬면 어디론가 터져나갈 것 같은 과냉(過冷)의 공기가 거리를 오갈 때
하늘의 터널을 지나 "천국에서 가장 최근에 우리들의 곁으로 온 사람은 누구입니까" 손질을 끝낸 아동용 금융상품 광고문안을 모델 아이의 눈을 어쩌면 유산될 포스터를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먼 기억 속의 친구 이름을 생각해내려교 애썼다 가슴에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과냉(過冷): 액체나 기체의 온도를 순간적으로 내렸을 때 미처 고화나 액화가 되지 못하고 그대로 있는 현상. 이때 모래가 한 알아라고 들어가면 액체는 유리처럼 깨져버리고 기체는 포화기압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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