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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수 시인 / 마음속의 고요
맑게 갠 푸른 하늘 인생이라는 삶의 대지 위로 새롭게 싹트는 내 푸른 영혼의 날갯짓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의 바다 모진 세월의 벽 너머 황금빛 햇살이 빛나는 내 마음속의 정원처럼
맑고 투명한 샛바람이 불어와 아무런 생각 없이 허공(虛空)속을 거닐다가 마주하는 피안(彼岸)의 세계
세상의 높은 벽 너머 뜨거운 열정과 노력으로 날아오르는 나의 꿈처럼
김월수 시인 / 빙화(氷花)
북극에서 처음 시작한 이별이 그렇게 좋은가요 오늘만큼은 시작점을 너무 빨리 만들지 마세요 슬픔이 가득한 봉오리에선 이별이 얼굴을 내밀지 몰라요 뜨거운 상태로 다가오지 말아요 당신 숨결이 손끝에 닿는 순간, 그냥 한꺼번에 녹아내릴 거예요 유리창에서 막 피고 있는 꽃을 바라볼 수 있는 이 순간 밖은 온통 명랑들뿐이에요 눈들은 다정하고 힘센 바람까지 너무나 친절해요 햇살이 반짝, 설산 위에 머무를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제발 슬픔의 안부가 되어주세요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단단함이 당신과 나 사이에서 갈라지도록 내버려두세요 우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번지고 있는 거잖아요 빙점을 살려내려는 차가운 몸부림을 멈추지 말아줘요 헤어진 사람과는 헤어진 공간만 있을 뿐이잖아요 나 오늘 어디든 가서 푹푹 빠져볼래요 그러면 그 속에서 잠자고 있는 당신 닮은 에델바이스 한 포기 발견할 수 있을까요
김월수 시인 / 이끼가 침묵할 때 변하지 않는 바위의 생각과 마주할 때마다 나는 가장자리 끝에 매달린 움직임을 본다 이끼는 스미는 습관을 내세워 백 년 동안 천천히 바위 위를 걷는다 가쁜 숨을 내쉬는 누룩뱀의 겁먹은 눈동자와 둥지 없는 새끼의 철딱서니 없는 추락을 보고도 바위 속에 갇혀 있는 단칸방이 누구를 위한 독방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기에 느린 걸음을 불평하지 않는다 공중에서 길을 잃은 빗방울의 흔적에서 쑥쑥 자라는 침묵의 냄새가 난다 누구의 허락을 받거나 누구에게 허락을 할 필요조차 없는 길을 가면서도 끊임없이 몸을 추스르려는 일관성을 이슬의 눈으로 바라본다 궁금한 것이 많다고 이끼의 침묵을 죄로 물을 수는 없는 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벗어나 숲의 일원이 되려는 가열 찬, 저 직진 한 뼘 더 자라난 목마름을 알아차린 것은 오직 바위 하나뿐이다
김월수 시인 / 어머님의 사랑
기억합니다. 가냘픈 하얀 꽃버선 정갈한 한복 입던 어머니의 모습 사랑합니다.
앙증맞은 분홍 꽃버선 미소가 떠나지 않던 딸은 항상 챙겨주시던 따뜻한 태양의 손길 속에서 무엇보다도 행복했던 그 시간들
붉은 동백꽃처럼 가슴 저리게 떨어지던 날 더 이상 늙지 않던 어머님의 몸은 흰 가루가 되고 강물의 모래와 뒤섞여집니다.
주르륵 슬픔의 눈물은 마음의 창문 위로 치유의 비가 되어 굴러 떨어집니다.
그래도 추억이 방울방울 떠올릴 때마다 딸의 가슴은 바다보다 넓고 큰 사랑으로 채웁니다.
김월수 시인 / 밤꽃이 흐르는 길
1. 먼 곳에서부터 하얀 손이 흔들어 날 불렀네 여기서 기다릴 테니 가을밤에 꼭 오라고 발끝을 높게 들어서 멀리서도 잘 보였지
네 바구니 내 바구니 한가득 채워놓고 두 손 들어 응원하던 그 손짓 반가워서 너와 나 함께 걸었든 그 숲길로 가고 있네
2. 파랗게 자리 잡은 모들의 손짓 따라 샛길 찾아 따라오니 어느새 구월의 숲 이제는 너와 나 함께 깊은 속맘 나누자
-《가람시학》2022. 제13회
김월수 시인 / 하이에나
사람들은 내가 사냥꾼인 줄 모른다
화상을 입은 나의 얼굴을 보며 썩은 고기와 시체를 치워주는 청소부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활활 타오르며 불이 번지는 숲속에서 화상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족을 데리고 나오는 가장이다 어떤 먹이도 부술 수 있는 튼튼한 턱을 가졌고 사자의 사냥감을 낚아채는 용기가 있다
사람들은 내가 벌판에 피어 있는 꽃의 아름다움도 모르는 줄 안다 나는 빨강 꽃의 정열 노랑꽃의 질투 같은 꽃말까지 사랑한다 꽃을 감상하고 노래할 줄도 안다 꽃이 있는 그곳에 사냥감들이 새끼들과 끼니를 먹으러 오면
가족을 먹이고, 지키고, 키워야 할 일거리를 찾아야 하는 나는 꽃을 쳐다볼 여유 같은 건 생각도 못 한 채 풀이 무성하고 꽃이 만발한 그곳을 못 본 척 뛰어 지나쳐야 하는 것이다
어슬렁어슬렁 들판을 거닐며 내일을 계획 할 수 없는 가장의 절박한 발걸음을 사람들은 알 턱이 없는 것이다.
김월수 시인 / 경전이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차곡차곡 정리된 명심보감, 천자문, 우리의 태실, 소학 등 그의 파편들이 어제 같은 몸짓으로 책장 안에서 쉬고 있다 귀퉁이의 공간도 포만감을 갖고 있다
당신에 산속 집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측량을 하고 나무를 세고 야단법석이다 어디로 갈 것인지 아직 정하지도 못했는데......
누구는 숲속으로 들어가라 하고 누구는 잘 정돈된 나무집으로 가라하고 이웃에서는 그가 가꾸던 산 속 집을 그대로 지키라한다 그의 손때 묻은 연장들과 냄새가 남아있는 옷들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듯 웅성거린다
그들도 차곡차곡 정리된 책장 속에서 잠을 자고 싶고 나무들하고 벗하고 싶고 새들의 소리도 듣고 싶은가보다
오늘은 명심보감 읽는 아버지의 소리를 듣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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