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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관영 시인 / 오늘 하루 잘 살았다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0. 28.
윤관영 시인 / 오늘 하루 잘 살았다

윤관영 시인 / 오늘 하루 잘 살았다

 

 

피로가 썰물 파도 치듯

발톱눈으로 빠져 나간다

저린 발이 풀리는 것마냥

발바닥이 펴지면서 알싸하다

하지감자를 캔

흙살과의 해종일

베인 살에서 핏방울 돋듯

그렇게 뒷덜미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샤워 샤워 샤워)

 

수제비 반죽을 떼어 던지듯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니스 바른 듯하던 땀

안경다리에 소들소들 소금기

지독한 땀 내는 향수 내와 같다

누운 지금, 피로가

발톱눈으로

검은 피 빠지는 듯하다

 

 


 

 

윤관영 시인 / 단양 소동

 어느 한날, 덕절산이 울렸다 단야파 쫑시기가 언 논ㅁ이고? 소동에 소금무지산이 부숭부숭 깨어났다 인자 유명세가 오르기 시작한 단양 파종시기를 칠성파가 관광객처럼 들이닥친 거였다 먼 일이래? 파종하던, 파 단 같은 대잠리장 마누라가 허리를 펴고 섰다 그냥, 도끼라 불리는 독기 리장 마누라가 육쪽 마늘 같은 얼굴을 들었다 일순, 파와 마늘 내가 산바람 타고 내리 흘렀다

 동풍에 쏠려 개울창에 처박힌 낙엽처럼 칠성파는 흩어졌다 파 같고 마늘 같은 여인네들은 하던 일을 이어 나갔고 이냥 고즈넉했다

 붉을 단(丹)에 볕 양(陽) 단양, 양기가 넘쳐 소금으로 눌러야 하는 사내들을 휘어잡고 사는 여인네들은 밭 같고, 다냥다냥 마늘쫑 같은 여인네들은 노을 같고, 노을이 비친 강 같고 그것도 상류고

 상류는 소금무지산을 휘감아 돌고

 

-<시에> 2022, 겨울호

 

 


 

 

윤관영 시인 / 뷰티풀 썬데이

 

 

 긍께 대근한 몸이어유 게을러터져 가난한 놈이어유 월에 두 번 쉬는 휴일을 11시까지 자빠져자는 놈이어유 그러니 당연 바닥인 놈이지유 삼 십 년은 내다보고 생을 설계해야 한다는데, 그마저 남지 않은 놈이어유 그러니 비전도 없는 놈이지유 늦게 일어나 즘심 먹고 또 자빠져 자니, 게으름이 눈곱처럼 붙은 놈이지유 그러니 골수까지 가난한 자지유 맨자지나 만지작거리는 자지유 달에 두 번 쉬는 날 쉬어터진 놈이지유 밀린 빨래나 널고 담배나 꼬놔 물고 스레빠나 끌고 어기적거리는 놈이니 친구로 두면 가난할 수밖에 없다 지목당하는 자지유 마땅하지유 자빠져 자고 일어나면 더는 잠은 안 오고 그제서야 술이 땡기는 몸이니, 천성이 무던한 자신을 재우쳐 일으킬 꿈이 없는 자이니 가난뱅이를 면치 못하는 자지유 꿈이라는 것이 건강이 떡상이라 믿는 자이니 한심한 자요, 꿈을 입에 담는 자를 욕심 많은 놈이라 여기는 자이니 그냥 육탁에 멍든 자지유 자지두 고패 숙이는 자지유

 자빠져 잘대로 자서 더 이상 잠이 안 와도 내일 일 가려면 자야 한다고 몸을 달래는 자지유 그도 안 되면 술을 한잔 더해 잠으로 기어들어가니 잠충이인 자요, 시간을 그냥 소진하는 벌레인 자지유 그게 바로 저지유

 속창아리 없이 속으로나 욕하는 자지유

 

 


 

 

윤관영 시인 / 복의 기원

 

 

그의 이름은 예스다

부르다 부른, 그 끝에 예수가 되었다

법 없이 살 놈이라 했다

목재로 성물을 깎는

목공이었다

고변을 당하자, 얼결에

예? 예? 예? 하다가

수수 수그러들었다

이 화상 대죄를 졌어! 죄저스라뇨?

주문 한번 외우자, 그는

공식 지저스가 되었다

지지듯 지지듯 지지듯

아나? 이 화상아, 조져쓰?

지금 머라 시능교?

바라 넌 되져쓰야!

화상아, 지그미 워떤 시상인디

추행이다 하믄 가는 시상인 기라

지가 와 그런 추접스러븐 놈이 된 겁미까?

그기 아닝 걸 우야 증명합미까?

글마, 인자 지는 우예합미까?

긍께 이 화상아 그만, 예스 라고

자복해삐라

그기 사바 시상이다

글믄 시상은 지한티 와 그런답니까?

 

그렇께 와, 하필

성물을 깎았다냐

우짤라고

 

 


 

 

윤관영 시인 / 이후, 그리고 이후

 

 

아버지 돌아가시고

삼우제 지내고,

오니

아랫말 아줌마가 올라오셨다

조용한 며칠이 흘러갔다

조용했다 도끼도 지팡이도

마당비도 한 구석에 있었다

낙엽은 배수로 쪽에 쌓였고

구들을 지나온 굴뚝 연기는 수직이었다

간간히 벨이 울렸고, 잊었던

망자의 물품이 불에 얹혀지며

산쪽으로 휘어졌다 조용했다

아주머니는 며칠을 계셨다

이웃간 부조라 했다

보일러가 간간이 코 고는 소리를 냈다

고개를 숙이고

군불을 밀어넣었다

티비는 독경소리를 내면서 조용했고

낙엽에 쌓인 배수로는

평지 같았다

고요했다

 

 


 

 

윤관영 시인 / 연통, 울다

 

 

그 소리는 잠결에 들릴 듯 말 듯 들렸다

 

급탕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처럼

아비의 코 고는 소리 들렸다 좀체 방은 따스해지지 않았다

아들의 코 고는 소리는 실내온도 맞춰놓은

보일러 소리처럼 일정했다

 

잠결에 들릴 듯 말 듯한 소리가 들렸다

긴 숨을 참은 듯한 해녀가 긴히 참은 숨이라

너무 천천히 배앝는 소리 같아 감지가 되지 않았다

 

대근한 몸이 왜 고꾸라져 잠들지 못할까 궁리하다 궁리하다

돋보기를 끼고 시집을 잠시 읽었다

마른 가지를 비질한 바람이 지나갔다

집 모서리에 부딪친 바람이 지나갔다

 

안사람이 고오오 고오오, 알루미늄 보일러 연통이

소리 없이 떠는 소리로 코를 골았다 마치

외출로 맞춰놓아 언제 돌아가는지 모르는

보일러 우는 소리로 울었다

 

시집을 덮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나

어떤 기척처럼 코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바람이 마른 가지를 흔들며 지나갔고

모퉁이에 부딪친 바람이 비명 없이 지나가는 동지께

언 동치미가 언 채

익어가는 밤이었다

 

 


 

 

윤관영 시인 / 人耕을 아시는지요?

 

 

 석회암 지대라 지표만 흙인 단양, 소를 들이대서는 밭을 갈 수가 없었다 밭 가운데 돌 자갈이 심심찮아, 소가 골 따라 움직일 수 없을 뿐더러 돌부리에 걸려 쟁깃날이 남아나지 않았다 경사까지 가팔라 그 일을 사람이 대신하게 됐는데, 때로는 여자가 소의 역할을 맡아서 쟁기를 끌었으니 女人耕이라고나 해야 할지 어린 난 그 힘든 걸 남자가 끌지 않고 왜 여자에게 시킬까 궁금했다

 

 돌에 걸려 아내의 어깨가 뒤로 휘청할세라 쟁기를 들어 돌을 타 넘고야 쟁기를 내려놓는 쟁기잡이 남편, 밭골의 상태에 따라 쟁기를 왼녘 오른녘으로 흔들었고 가래의 깊이를 조절하였다 아내 눈치 보며 내내 밭을 갈아엎어야 했다 말 한 마디 없는 勞心과 焦思 이는 아내도 마찬가지여서 양손을 가슴골에 묻고는 쟁기가 돌에 턱! 허니 걸려도 모르쇠로 턱이 무릎 닿도록 허릴 숙였다 뒤에서 다 보는 남편은 쟁기를 밀어 골을 내었다

 

 일 끝나기 무섭게 쇠죽 먼저 쑤듯, 소가 상전이었다 쇠죽을 내고 짚검불을 깔고 끌개로 털을 긁어주고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인경이 있던 날 해시(亥時) 무렵해 끓는 콩기름장판방에선 여인의 신음이 돌을 긁으며 타 넘는 쟁깃날처럼 소쿠라졌다

 

 남자끼리 끄는 인경도 있었는데 부부간 인경은 되우 궁하거나 형제가 없거나 금실이 좋아야 했다 뿌리를 슬쩍궁 잡아당기기만 해도 딸려 나오는 감자알처럼 애들이 조랑조랑했다 돌밭농사에도

 

-<시와세계> 신작소시집 2024 봄호

 

 


 

윤관영 시인

1961년 충북 보은 출생. 서울신학대 신학과 중퇴. 1994년 ‘윤상원문학상’으로 등단. 1996년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나는 직립이다」 외 3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어쩌다, 내가 예쁜』 『오후 세시의 주방편지』. 현재 『미네르바』 자문위원. 2009년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수상. 현재 망원동에서 아들과 함께 식당(父子부대찌개)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