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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성호 시인(시조) / 기쁨과 슬픔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1. 7.
김성호 시인(시조) / 기쁨과 슬픔

김성호 시인(시조) / 기쁨과 슬픔

 

 

삶이 온통 가시밭길이어서

쉽게 기쁨 만나 손잡고 웃음하지 못하여도

하고 한날 슴픔에 절어

작은 꽃송이 한잎 꽃피우지 못하고

비탄의 눈물 그만 멈추고

어느 안개비 그친 날

봄바람에 꽃씨하나 실리어

보드라운 흙 속에 살짝 묻히면

부끄러운 듯 잔 뿌리 뻗고

새순 쏘옥 내밀며

말로는 못 다하는 기쁨의 세상에 눈 맞추어

한들한들 춤추면서 감미로운 노래부르며

살 저미는 상처도 아픔도 무엇도 잊을 뿐

가물가물 은혜의 바다로 흘러간다.

 

-시집 <연약함이 강함을 용서한다>에서

 

 


 

 

김성호 시인(시조) / 대곤(大鯤)

 

 

기다려 온 세월 그대로

기다릴 뿐

어느 누구 만날 수 없고

흐르는 세월, 출렁이는 물살

손잡지 못하여

세월이 가로와 세로

바다를 돌면서

파도 겹겹이

바람 스미는 물 그림자

파도자락 헤치면서 세월을 기다린다

 

목선 한 척 이끌며

그대 곁 웃음 펄럭여 가며

아득한 바닷가 궁궐을 지을까

물 스치는 돌팔매로

 

그대 곁 제비되어 휘돌면서

웃음을 빚고 빚어

빛나는 성(城) 쌓을까

끝남이 없는 노래 부를까?

연줄을 타고 올라가

연에 매달려

그대 함께 높은 하늘에서 만날까

항해사 되어

그대 떠난 세월의 바다와 섬들을 만날까

비행기 이끌고

밤하늘 성좌를 짚어가며

직녀성 길 찾아갈까?

 

어느 누구 길 묻지 않는 하늘에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바다, 부두에서

 

버린 세월, 잊은 얼굴을

잊은 사람, 지운 그리움을

찾아내어 돌이켜도

마음 속, 그림 한 폭, 펼쳐 봐도

무엇 하나 낚아 올릴 수 없고

쓸쓸히 낚시줄에 세월을 담근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되고

파도치면 파도에 남실일 뿐

저렇게 세월을 물주름 펴도

 

무엇 하나 낚을 수 없는

사람을 낚는 어부,

낚시에 걸리니 사람으로만

세월의 낚싯대에 물주름 꿰매어

 

어리석은 춤출 뿐.

 

무엇 하나 낚을 수 없는

미끼가 되어

고기가 되어

사람들을 스쳐 보내고

사무치는 마음 다 흘러 보내고

 

어리석게 밤 바다에 비껴 나와

세월의 물방울 방울 튀기며

머리카락 헹구면서

세월과 낚시마저 잃는다.

 

무엇 하나 걸려 들지 않는 바다.

출렁이며 몸살하는 세월의 상처

 

바위벽을 때리는 물살과 햇살을

동그랗게 꽃피워 놓고

갈매기 날아와 세월을 몰고 떠나며 노래할

해표(海豹) 헤엄쳐 세월의 풍랑과 바위로 기어오를

억겁 세월, 해일 넘어 온 바다를 휘도는

대곤을 기다리다

세월을 키질하여 바람개비 돌리고 돌린다

 

파이돈의 억센 팔뚝에 걸려들

억겹 세월을 견뎌 온

그 세월, 그물 사이로 빠져 달아난

수많은 파도와 섬들 이름을 되뇌이며

빛나는 세월을 짐부리어

끝없는 바닷가 견고한 성(城),

타지마할을 쌓았다 허물면서

 

초록 자잔한 웃음을 흔드는가

울음을 흔드는가?

 

 


 

 

김성호 시인(시조) / 조모의 수의(繡衣) 자랑

 

 

살아서 조모님은 백 가지 옷감이며 장옷 자랑하고 싶어

일가 친척 이웃 여인들이 오면

부끄러운 듯 웃으며 옷자락 펼쳐 보이며

고운 할미꽃을 피우곤 했다.

 

스물 넉 세 촘촘하게 베 짠

손길마다 비취 강물 헤쳐내며

밤 되도록 무릎과 샅,

살점 베이는 아픔 참아가며

삼 껍질 잘근잘근 씹어대며 길쌈했다.

 

고운 손 마름질로

꽃무늬 수놓으며

살아서 못 다한 사랑

저승서는 이루리라

 

먹 파도 하늘 치솟아도

극락의 꿈 기구하다

 

조부님 역마살이 남 부끄러워

등심지 낮추어 밤 지키던 날의

oo 같은 인종을 꽃씨 뿌리면서

외아들 하나에 등기대어 세월이 파도를 건넜다.

 

년년이 새옷 곱게 깁고

정갈한 마음 접었다 펴, 마름질하며

동네 여인들 잡스런 웃음 맑혀 내어

살아서 온갖 눈물 미리내에 흘러 보내려

눈부신 꿈 수놓아 가며 해마다 꽃등 켜 들었던가?

 

-시집 <연약함이 강함을 용서한다>

 

 


 

 

김성호 시인(시조) / 피어싱

 

 

아홉 개의 구멍이 모자랐어요

부패한 내장의 밍크 고래가 폭발하듯

나를 폭파시킬 수 있었다면 그리했을 거예요

 

콧방울, 혓바닥, 유두, 배꼽, 은밀한 그곳까지

바벨의 뇌관을 박는 거지요

하늘에, 땅에, 당신의 심장에 총구를 겨누는 대신

 

거추장스러운 몸뚱이에 거추장스러움을 더하는 일

(부정의 부정을 하면 긍정이라 당신이 말했지요, 이상한 문법)

 

무엇이든 뚫고 싶었어요

답답한 도시, 답답한 공기, 답답한 사랑, 답답한 당신들......

 

갈라진 혀로 조금씩 조금씩 피 흘리며

껌 씹기, 침 뱉기, 사탕빨기, 키스하기......

짜릿한 아픔이 퍼질 때마다 살아 있는 나를 느끼는 거죠

 

반짝이며, 잘랑이며, 아슬아슬하게 팽팽해져

이 거리를 활보할 거예요

부딪히는 것마다 터뜨릴 거예요

지루한 건 참을 수 없거든요

 

뚫어 보실래요, 당신

 

 


 

 

김성호 시인(시조) / 야생 보호 구역

 

 

나마스테,

내 안의 황야에게

황야의 굶주린 맹수에게

피 흘리는 옆구리에게

옆구리에서 자라나는 가시에게

가시뿐인 덤불에게

덤불을 키우는 바람에게

 

침묵의 동굴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어떤 사육사로도 길들여지지 않는

태양을 삼켜 버린 달처럼 빛나는

홀로인 야수

야수인 예수에게

합장,

 

 


 

김성호 시인(시조)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현대문학 전공. 월간 《현대시》 2002년 신인추천작품상 등단, 계간 《시조문학』》 1994년 추천완료. 시집 『소리의 하늘』 『소리의 여행 』 『보도블록에 깃든 숨결』 『연약함이 강함을 용서한다』. 비평서 『한국대표명시선 해설』. 현 잠신고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