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노향림 시인 / 동백숲길에서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1. 12.
노향림 시인 / 동백숲길에서

노향림 시인 / 동백숲길에서

 

 

아름드리 동백숲길에 서서

그 이름 기억나지 않으면

봄까지 기다리세요.

 

발갛게 달군 잉걸불 불꽃이

사방에서 지퍼진다면

알전구처럼 밝혀준다면

 

그 길

미로처럼 얽혀 있어도

 

섧디설운

이름하나

기억하나

돌아오겠지요.

 

 


 

 

노향림 시인 / 남천(南天)

 

 

남천은 괴롭다.

고층 아파트 베란다로 이사온

그가 까마득히 내려다보는

절벽이 삶일까 생각하는 사이

멈췄던 생각들이 주춤주춤 빠져나간다.

 

각혈하듯 제 잎들을 토해서

빨갛게 언 발등을 덮는다.

추위에 꼼지락거리는 화분 위로 내놓은

발가락이 많이 텄다.

 

강변도로에는 혼돈이 식어서 밀리며 정체 중이다.

밀리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나트륨 가로등의 목에 겨우 걸터앉아 조는

짧은 오후가 서쪽 하늘에 밀려 있다.

 

눈뜨면 이마에서 사라지는

쇠오리들의

발꿈치.

 

밤섬이 한 순간 수많은 은빛 가락지들을

뒷발질해 띄워올린다.

출렁거리던 섬이 마침내 상공으로

떠서 날아간다.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한겨울 오후

남천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찬 땀을 매달고 섰다.

 

 


 

 

노향림 시인 /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해에게서는

언제부턴가 종소리가 난다.

은은히 울려 퍼지는 소리 앞에

무릎 꿇고 한데 모으는 헌 손들

배고픈 영혼들을 위한 한끼의 양식이오니

고개 숙이고 낮은 데로 임하소서

하늘이 지상의 빈 터에다 간판을 내걸었다.

무료 급식소,

무성한 생명력의 소리 받아먹으려고

고적함을 견디며 서 있는 길고 긴 행렬

깃털처럼 야윈 몸들을 데리고

될 수 있는 한 웅크린다.

아무것도 움직여본 적 없고

스스로를 쳐서 소리 낸 적 없는 몸짓이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파동치는

해에게서는

수세기의 깨진 종소리가 난다.

 

 


 

 

노향림 시인 / 봄비 1

 

 

 지난 겨울 누우드로 버티어온 나무들이 유심히 제 몸을 들여다본다. 수없이 많이 튼 살갗을 아프게 때리는 빗줄기. 한때 농익은 열매 매달고 놀던 無性생식의 까만 젖꼭지를 퉁겨 본다. 어디서 보았을까. 몇 채의 집들이 들판에서 등 돌려 앉는 것을. 쑥대머리들이 귀를 쫑긋거리고 키를 늘인다. 온종일 속옷이 벗겨진 하늘에선 미처 피하지 못한 바람들만 산발한 채 뛰어다닌다.

 

 스스로 물소리를 만들며

 흘러가는 비, 비.

 

 


 

 

노향림 시인 / 봄비 2

 

 

 빠르게 흐르는 빗줄기. 라일락이 밥알 같은 꽃을 매단 주위는 온통 환했다. 묵은 김칫독을 들어낸 구덩이에는 겨울의 긴 뿌리가 언 채로 드러났다. 채 녹지 않은 꿈이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끌려나온 흔적. 이름 없는 나무들의 저 빈 가지 끝 숱한 얼굴 속 어디에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의 내가 있는지. 사진첩을 펼친 듯 봄밤이 환히 어두워져온다.

 

 


 

 

노향림 시인 / 원조 최대포집

 

 

공덕 오거리 먹자골목엔

원조 최대포집 간판이 도처에 있다.

드럼통 속 구공탄 불꽃 활활 타오르고

그 위 쇠강판 씌우면 누구든 원조 최대포집.

알전구 흐린 불빛 아래 어깨 굽은 원조들이

불그레한 얼굴로 둘러앉아 있다.

 

그가 박가이건 이가이건 김가이건

서로 모르는 사이도 이마 맞대고 둘러앉아

하루지기가 되는 집.

생고기 굽는 냄새 자욱하고 허연 민짜 껍데기들

지글거리다 바싹 탄 시간들처럼 오그라든다.

사는 일이 그렇고 그렇다고 동행한 허기들이

불판 위에서 뜨겁다고 몸 뒤집는다.

양념 된장에 쪽마늘을 마구 축내다가

여기 토종 생마늘 풋고추!

쇠강판도 덩달아 달아올라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

 

번번이 자리 놓쳐 문밖에 어둑하니 기웃거리는

무표정한 몇몇 얼굴들이

먼 공중에 박힌 낯선 하현달 같다.

오늘 하루도 잘 버티었다고

굽은 어깨 흔들며 서로 지는 줄도 모르고

원조들 부딪는데

좀체 일어설 줄 모르는데.

 

 


 

 

노향림 시인 / 지하철 안에서

 

 

나는 지하철을 즐겨 탄다.

시간이 절약되고 무엇보다 정확하기 때문이다.

전천후로 달려 모든 약속시간에 댈수 있어서 좋다.

열차가 역사로 들어오기 직전 뚜우- 하는 짧은 신호음은 시공을 뛰어넘는 추억여행같다.

유년기에는 기차역을 자주 서성거렸다.

기차가 검은 몸체를 뒤틀며 산모롱이를 돌아가면 까닭모를 설움에 젖어 손을 흔들고는 했다.

이런 아련한 기억을 연상케하는 지하철이 좋다.

시를 쓰다가 잘 나가지 않을 때 나는 무작정 지하철을 탄다.

종점에서 내리지 않고 한바퀴 비잉 돈다.

이때 지하철은 내 상상력을 높여줄 좋은 장소가 되기도 한다.

미니 콤팩트디스크를 귀에 꽂은 날이면 금상첨화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고전음악 감상실이 되기도 한다.

겨울빛이 짙어져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많다.

지하철을 꽉 메운 이런 이들로 인해 내 마음도 겨울을 탄다.

계절마다 또 다른 모습의 배경으로 오는 감각.

이런 감각은 삶을 정말로 역동적이게 한다.

이런날 자욱이 눈발이라도 내리면 아, 살아있다는 사실의 고마움이여! 하고 무의식중에 탄성을 발한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삭막한 풍경이 연출되는 곳이 또 지하철이다.

이젠 쉽게 노인들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얼마전까지 8명도 끼어앉던 좌석이 7명이 앉게 되었다.

6명이 앉아있는 모습을 본 어느 중년이 "아 조금씩만 좁혀 주실까요?" 한다.

그리고 거의 앉을 자세를 취한다.

중년의 남자가 무안을 당한 것은 그렇게 정중하게 말을 해도 좁혀지지 않는 사람들의 무표정이다.

정물처럼 꿈쩍도 않는 사람들을 보면 오늘의 세태가 한눈에 드러나는 듯하다.

서로가 바쁘게 살아 피곤해서 편안해지고 싶은데 왠 말이 많으냐는 듯한 표정이다.

교복 입은 여학생들도 꿈쩍않는다.

아예 눈 감고 앉아 상대편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주 작은 이기심들을 충족시키는 모습들을 보면 슬퍼진다.

지하철에서는 서있는 자의 편안함을 누리겠다고 한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자기를 자기로서 버티고 주장하는 모습이 공공장소에서는 그렇게 이기적이 된다.

 

 


 

노향림 시인

1942년 전남 해남 출생. 1965년 중앙대 영문과 졸업. 1970년 《월간문학》 시 부문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 『K읍 기행』 『눈이 오지 않는 나라』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압해도를 보지 못하네』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등.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이수문학상, 제4회 인산문학상, 제11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제11회 구상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