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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은진 시인 / 그런 거야 외 6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1. 24.
최은진 시인 / 그런 거야

최은진 시인 / 그런 거야

 

 

산등성이 온통

솔바람 가득하고

 

낮게 핀 꽃무리

이 계절 견디지만

 

내 걸어온 길이 너무 아파

자꾸만 걸음이

무너져 내린다

 

한 사람을 위한 깊은 다정도

스치는 바람처럼

부질없는 것임을

 

봉선화 꽃잎 지니

나....

알 것만 같다.

 

 


 

 

최은진 시인 / 노을

 

 

순한 삶의 길을 원하진 않았다.

그리 굽은 길을 원하지도 않았다

 

사랑할 수 있다면

그리워할 수 있다면

저 이정표처럼 혼자여도 나는 좋았다

 

믿고 싶었다.

바람이 이 날을 거두어가도

나는 너의 가슴을 믿고 싶었다

 

부질없는 이 생에 한 포기 풀처럼

너를 사랑하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이제 다시 사랑이고 싶다.

우리 두 가슴이 만나

따스한 저 노을로 서 있고 싶다

 

쓸쓸한 날에 하늘이 저물어도

나는 너의 바다를 지키는

하나의 풍경이 되고 싶다.

 

 


 

 

최은진 시인 / 루드베키아를 보며

 

 

나의 텃밭에도 계절이 피고진다

앞서지도 뒤돌아서지도 않는 그저

따스한 그 곳

 

나도 한송이 꽃처럼 바람을 맞고 싶다

내게 온 모든 샘의 이별을 흘려 보내고 싶다

 

이제 마지막인가?

어지러운 꽃의 슬픔... 어쩌면 나였을 너....

노란 눈물의 다정이 아프다

 

 


 

 

최은진 시인 / 비 내린 후

 

 

비 오는 뜨락에 팔월은 곱고

꽃잔디 나지막한

울집 울타리가 차분하네

 

푸른구름은 어디로 가고

잿빛 하늘 쓸쓸한

질경이만 한창일까

 

어제의 개울은 차고도 넘치는데

걸어도 그 가는 곳은

아직도 아득하니

 

비바람에 접시꽃은 이미 저물어

촉촉한 8월의 꽃들은

내 맘 하나 모른다네

 

 


 

 

최은진 시인 / 그랬음 좋겠어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일도

그랬음 좋겠어

 

봄이면 꽃피고

가을이면 꽃 지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듯

 

우리 인연도 바람에 꽃가루 젖듯

그대에게 흐르는 내 마음도 어쩌면

가벼운 몸짓이었음 좋겠어

 

어느 하나 쉬이 피는꽃 없듯이

수많은 가슴 도닥임이 있어야

꽃 한 송이 피어날 수 있음을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일도

힘겨운 그리움을 견뎌낸

그런 꽃이었음 좋겠어

 

 


 

 

최은진 시인 / 우문

 

그대도 나처럼 외로운지

그대도 나처럼 쓸쓸한지

비오는 가을 앞에 무심히 물어본다

산다는 게 채워도 부족한

구멍 난 상처 같아서

그 아픔 채우려 안간힘 쓰는

허무한 내 몸짓이 아프다

묻고 또 고개 숙인 내 마음이 그렇듯

가을은 그대에게 외로운지 묻는다

하염없이 내리는 이 비가 아파서

홀연히 가방 들고 바람처럼 떠나가도

언제나 서서 가슴 내려 두는 곳은

너 아니 없는 모든 것의 가득한 공간이다

갈대 서걱이는 가을이 울어

그 곁에 서 있는 나도 잠시 울어

그대도 나처럼 쓸쓸한지

그대도 나처럼 외로운지

사랑 떠난 가을 앞에 가만히 물어본다

 

 


 

 

최은진 시인 / 7월의 어느 밤

 

내게 오는 그 계절에

그대가 온다

흐릿한 먹구름 아래 스미는

저 바람처럼 내게로 온다

때로는 지워도 별처럼 피고

때로는 잊어도 어둠처럼 찾아오는

그대라는 계절은 언제나

슬픔으로 내게 온다

줄 것 없어 애달픈 내 가난한 마음도

여름날의 잠깐의 소나기였을까

그리 멀리 갈 줄 알았는데

그리 오래 함께일 줄 알았는데

사랑은 늘 다음으로 가고

이제는 오지 않을 그대도 간다

 

 


 

최은진 시인

1974년 부산 보수동 출생. 대학에서 컴퓨터공학 전공. 2017년 한올문학 시 부문 등단. 2019년 계간 《서정시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나주지부 회원. 나주문인협회 회원. 시집 <조금은 쓸쓸한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