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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송포 시인 / 고독 한가운데 외 7편

by 파스칼바이런 2025. 12. 6.
김송포 시인 / 고독 한가운데

김송포 시인 / 고독 한가운데

 

 

​ 이유 없이 몸 한가운데 이상이 생겼다

 

 아름다움이란 잠깐 빌려온 것, 찬바람이 복부로 침투해서 단맛을 빨아들이고 호흡곤란을 겪게 했어. 배앓이는 시작되었어. 아미노산과 비타민을 1시간여 만에 수액 두 대를 빠르게 맞고 경련을 일으켰다. 몸을 바닥으로 수그렸으나 나오는 것은 노란 액체뿐

 

 차가운 달 표면에 앉아 본 적 있나요

 

 고독한 그림자가 몸의 중앙을 지나가고 있어요

 

 불안해서 불만이라 말하지 않았다

 

 사랑이 누군가에게 속해있다는 감정을 모르고

 

 혼자 의기양양하게 가다가 넘어졌어

 

 몸의 중앙을 강타한 기록은 욕망이 일어선 것

 

 계산서도 없고 결말도 없고 고독하게 흘러가는 것

 

 지금의 고독을 떠나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어

 

 몸 한가운데에서 일으킨 반란이 광장이었으면

-웹진 『시인광장』 2025년 10월호 발표

 

 


 

 

김송포 시인 / 상강

 

 

강한 햇볕을 쬐며 걸었다

여름 아이처럼 여름에 강한 것인지 강한 척하는 것인지

두드러기는 보이지 않았다

여름을 무사히 넘기고 찬바람 불면 도발은 사라지는 거지

환절기에 옷매무시를 가다듬는 동안

몸 여기저기에서 이상한 발진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지

토하고 호흡이 빨라지고 떨게 했지

피자를 마주하기만 해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여자가 되어가는 중이다

만난 지 십 년이 되었으니 멀어져갔을 거야

위로하는 동안

당신과 나의 계절은 어디쯤일까

벽을 사이에 두고 숨을 쉬는 사이가 되었어

굳이 이유를 대자면 깨는 시간이 달랐어

우리의 환절기는 벼를 거둘 때부터 라고 할까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방으로 옮기다 머뭇거릴 때

당신과 나의 온도를 41도로 유지하면 어떨까

멀리 있어도 숨을 어떻게 몰아쉬는 지

강을 건너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 계절에 살갗을 비비어볼까

적절한 시기와 적정한 온도를 찾아 어느 방에 들러야할까

가을의 한중간, 나뭇잎은 이마에 떨어질 것이다

 

-주간 『경남저널』 2024년 5월24일字 발표

 

 


 

 

김송포 시인 / 사북의 터널

 

 

 뜨거운 태양이 돌아가다 땅이 돌아가다 남자도 돌아가다 쏟아지는 한탕의 무더기를 기다리며 눈썹이 휘날리다

 

 카지노에서 흥분된 사람을 본 지후다 낯선 환경에 어리둥절한 모습이 북쪽이었을 것이다 사북은 죽은 것 같으면서 살아있고 살아 있는 것 같은데 죽은 듯 절망이 있다 전당포에서 사람을 기다린다 팔과 다리를 늘어뜨리고 의자에 걸터앉아 게임에 눈을 박은 사람들, 한탕하고 빠지려다 눌러앉은 퀭한 사람들, 손가락을 눌러보지만 될 리 없는 얄팍함에 마음을 뺏겨보는 일, 사람이 죽을 수도 살 수도 있고 북쪽 하늘 바라보는 일처럼 미로 같은 술수가 난항이다

 

 인공으로 지은 암벽 터널이 북쪽으로 뚫려 있다

 밤이 지나면 밤의 뜻을 알까 바위에서 눈물이 흐른다

 

 수염을 기른 초췌한 얼굴로 식당 구석에서 국밥 한 그릇 시켜놓고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터널의 못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 2023년 겨울호

 

 


 

 

김송포 시인 / 스며들다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당신에게 스며들었다 김치의 맛이 배어 그 맛을 생각나게 했다 단어와 단어가 몸 안에서 은근히 밴 언어로 스며들다 닮아 간다는 것이다 저절로 배어든다는 것은 수레바퀴에서 거스를 수 없는 순리다

 한겨울 추위가 으슬으슬하게 떨게 할 즈음 두드러기 같은 꽃이 피었다 몸에 핀 발진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스며든 독소의 증상이다 따뜻한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이동하면 살갗이 적응을 하지 못해 칼같이 스며들어 혈액이 반응한다

 스며든다는 것은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몸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비슷한 온도와 구름 같은 흐름이 자연을 닮게 되었을 때 하나가 되는 것, 비슬비슬하게 어울린다는 말, 간장과 식초냄새가 발효음식이 되면 몸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 틈과 틈 사이 미세하게 서로에게 스며들

 

​-시집 《즉석 질문에 즐거울 락》

 

 


 

 

김송포 시인 / 즉석 질문에 즐거울 락

 

 

 예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거 아카데믹한 질문이오 붓으로 그림을 그리며 눈을 치켜뜨며 붕어라고 생각해 왜요 덕화가 촬영만 끝나면 가방 메고 가길래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낚시를 간다고 하더군 낚시꾼이 낚시할 때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오 붕어요 붕어는 잡았다가 놓아준다고 합디다 그저 좋아서 하는 거죠 나도 좋아서 하는 거요 내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제일 재미있기 때문이오 당신들과 얘기 나눌 때 그림을 그려도 이해해 줄 수 있겠죠 나는 잠시도 손을 놓고 싶지 않소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오 나는 이상을 이상 이상이었다라고 소개하고 싶소 이상의 소설 『날개』 알지 그거 하나면 충분해 그렸다가 버려두고 다시 붓을 잡고

 

 그리는 그리는 그리는 그리고

 

 버리는 버리는 버리는 붕어

 

 또 질문 있어요 혹시 사후에 이 많은 그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현재 그리는 것도 버거운데 죽은 후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소 나의 그림으로 영생을 바라고 싶지 않소 그저 매일 좋아서 색칠하고 붙이고 오리고 덧칠하고 붕어처럼 바다에 놓아주고 잡고 놓아주고 반복만이 즐거울 락

 

​-시집 《즉석 질문에 즐거울 락》

 

 


 

 

김송포 시인 / 찻사발

 

 

그릇을 보여주겠다

 

그릇인지 그림인지 사진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을 들여다보려고 머리를 갖다 대자 실제가 아닌 그림이 살아왔다 미세한 점들이 검버섯보다 옅은 자국으로 돌아왔다

 

긁힌 자국은 서로 할퀸 상처의 말을 밑줄로 새기어 광을 냈다

갈라진 선들은 더 다가가 덧칠했다

 

찻사발 사발 사발 사발

 

사발 우물에 눈을 넌지시 담아보았지

생각보다 깊고 넓다

사발에 왜 기린을 그렸지

기린이 아니고 학이다 목을 길게 빼고 고개를 숙인 모습

 

마치

 

차를 마시며 목련의 잎을 우린 물속에서

당신을 불러 보고 싶은 것처럼

 

굳이

 

황토와 찹쌀 풀과 옻칠을 섞어 매끈하게 빠진 그릇

떨림으로 숨을 쉬며 다가가 눈을 맞추어 보았지

 

구석구석 틈을 메워주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실금이 짙어질수록 당신과 나의 기록은 깊어질 것이다

 

먼 옛날을 살펴보며 사발의 맥을 짚어보다 놀란 사물의 기록

 

차 마시러 가서 사발에 금을 칠해볼래요

 

웹진 『시인광장』 2024년 6월호 발표

 

 


 

 

김송포 시인 / 팽이

 

 

 어지러운 순간이 있어 다리를 모으고 정지해 있을 때 동그란 몸이라고 했지 달이 돌고 그림자도 돌고 돌아가야 웃는 일들이 많이 생기지 동네 한 바퀴 돌고 있을 즈음 렌즈에 잡힌 남녀의 그림자를 보았다

 

 돌아가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정자 위의 난간에서 전철 개찰구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헤어지는 순간까지 손을 돌리고 허리를 돌리고 입을 돌리고 지구를 돌리는 일들이 있다 길에서 숲에서 공원에서 달빛은 입술을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고개를 돌리고 안경을 돌리고 다리를 돌려야 이루어지는 찰나가 팽이의 모습으로 있다

 

 오랜만에 너의 둥근 몸을 밤새 돌리며 깔깔거린다 뾰족한 발가락을 올리고 종종거리며 발레 하는 비비안의 다리처럼 길어지지만 멈출까 봐 붙었다 떨어졌다 허공과 허공 사이에서 돈다

 

 백 년 만에 잡아 본 너를 팔로 돌려야 한다는 사실이 서러워 두드리면서 가까워져야 하는 애인과 애인 사이가 멀기만 하구나 팽이는 팽이대로 너는 너대로 얼마만큼 돌려야 정수리에 닿을 수 있을까 닿을락 말락 너의 밑을 굴리는 한 밤의 로멘스

 

 


 

 

김송포 시인 / 스멀스멀 옮겨 다니는 무늬

 

 

결코 우리를 가두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손은 잘못이 없다

창살을 만들지 않았는데 스스로 갇히어 신음하고 있다

무늬가 무성하여 소나무 숲에 푸름을 찾으러 가야 한다

 

열려 있는 공기는 적이다 마스크는 최대의 방어다

 

입을 봉하고 코를 봉하고

파괴력을 지닌 핵도 아니고 스며드는 저 무늬의 정체를 막을 수 없으니

박쥐는 어디 가서 어떻게 붙는다는 것인가

 

한때 이리저리 간을 보며 붙어 다닌 적이 있었다

 

사람한테 붙으면 돈을 벌려나

책과 붙어 있으면 시인이 되려나

가로등과 사귀면 골목이 열리려나

꽃이 많으면 새가 모여들려나

 

수많은 날갯죽지를 펼쳐가며 벽에 붙어 다닌 흔적을 알고 있을까

너의 탓이 아니고 나의 탓도 아닌 0의 전쟁은

 

무한

 

골방으로 끌어들여 세포를 만들고 무늬를 만들고

하얀 복면의 칼을 들었다

 

 


 

김송포(金松浦) 시인

1960년 전북 전주 출생, 2013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집게』 『부탁해요 곡절 씨』 『우리의 소통은 로큰 롤』. 포항소재문학상, 푸른시학상 수상. 제1회 상상인 시집창작지원금 수혜. 현재 '성남FM방송' 라디오 문학전문프로 <김송포의 시향>을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