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박남철 시인 / 산유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5.
박남철 시인 / 산유화

박남철 시인 / 산유화

 

 

1

만약,

 

이름을 밝히지 말고

이 시인 노릇 하라면

 

이 1교수 1잡지 시대에,

이 1시인 1잡지 시대에,

 

시 한 편에 10만원,

7만원, 5만원, 혹은 3만원……

 

아니라면,

 

요즘의 대부분의 시인,

잡지들이 그러하다듯이,

 

만약 원고료조차 없다면, 없었다면,

 

아, 내가 이 시인 노릇을 이토록 지겹도록 계속해왔을 것인가?

쉰, 여덟의 이 나이에사 이제서야 겨우, 깨닫게 되는구나!

나는, 특히 우리는, 우리라는 존재들은,

저 보살이란 존재가, 보디사트바(Bodhisattva)란 존재가,

시인이란 존재가 결코 될 수 없을 뿐인

 

모순의 존재들이었을 뿐임을.

 

(나리, 나리, 메나리토리……)

 

아아, 잘도 나 꽃 피어났어요, 나 꽃 피어났어요 하며

잘도 빵긋빵긋 웃어가며, 사진 찍혀가며, 우리 스스로를

사진 찍어가며 (이름 불러가며) 살아온 것이로구나.

 

아아아,

 

나,

 

나나나 나, 나,

 

나여, 나여, 나여,

불쌍한 나의 이 한때 그 유명해지고도 싶었던, 꽃

꽃, 그 꽃, 이 꽃일 뿐인 저 아상의 세월들이여.

 

2

서울에서 안성, 안성으로, 아냐, 서울에서 용인으로

다시, 용인에서 안성으로, 아냐 다시, 안성에서 서울로

1년 사이에 세 번씩이나 이사를 해버리고 말았구나.

 

꽃도 좋고 산도 좋고 다 좋긴 하다, 만(卍),

아냐, 꽃이고 나발(一꽃)이고 당나발이고 간에,

내가 상갓집의 개꼴이 다 되어버리고, 만, 것만큼은

 

갈데없이, 엄연한, 사실인 듯하도다.

 

 


 

 

박남철 시인 / 이사를 하고

 

 

용달차에 책상 두개 책장 두개

그리고 컴을 대충 꾸려 먼저 실어보내고

서산 위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을 눈부시게

눈부시게 바라보며 눈시울을 훔쳐내며

엑셀을 밟고 또 밟았습니다.

 

서울에 도착하니 우선 잠이 왔었습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 우선 보쌈을 시켜

먹었습니다. 그리고 천근만근민 몸을

달래며 컴퓨터 책상부터 우선 자리를

잡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천근만근인 몸을 우선 달래며 컴퓨터

책상부터 자리를 잡아주었습니다..............

 

이제 시작인 게지요.

 

 


 

박남철(朴南喆) 시인 (1953-2014. 향년 61세)

1953년 경북 포항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同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9년 《문학과 지성》 겨울호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 『지상의 인간』 『반시대적 고찰』 『러시아집 패설』 『자본에 살어리랏다』 『바다 속의 흰머리뫼』 『제1분』. 시선집 『생명의 노래』. .공동시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비평시집  『용의 모습으로』 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