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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여원 시인 / 옹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5.
이여원 시인 / 옹관

이여원 시인 / 옹관

 

 

앙암 동쪽 나주 독 널 무덤가에서

옹관 재현 사내에게 옹관 하나 들였다

 

한 집안의 흘러가는 시간이 검은 봉지 같은 맛을 낼 때면 뒤란의

소금단지를 자주 열어 소금 빛을 뿌린다

 

귀찮은 것들은 부패를 앞세워

습기찬 얼굴로 일조량을 요구한다

세상의 짠맛들은 건달처럼 들락거리지만

싱거운 말들만 늘어놓는다

 

바람이 앉았다 간 꽃잎을 따서 맛을 보면 짭짤하다

새벽 쪽에서 오는 어둠을 마당 밖으로 쓸어낸 빗자루 지나간 자리에

소금을 뿌린다

 

옹관의 내장은 거무튀튀한 독평獨平이다

 

소금의 순환, 끝없는 갈증은 아무도 모르는 시간에

수도꼭지를 풀고 있을지도 모른다

갈증의 뒤끝은 늘 울렁거리고

오래 물 담아놓은 옹관의 안쪽 맛이 난다

 

맨발로 밟아 반죽한 부드러운 무늬들이 장딴지 근육으로

불끈 굳어가는 가마 속

옹관의 고향은 흙이다

 

소금같이 피어나는 이팝나무가 새하얀 머리를 흔들고 있다

 

 


 

 

이여원 시인 / 수호천사가 필요해

 

 

수호천사가 다른 말로 뭐라고 생각해

훼방꾼

 

춥고 어둡고 얼음 덮인 곳에서 올라왔지

그리고 달을 보았지

아주 크고 밝게 빛나는

달은 어둠을 흩어서 쫓아냈지

 

더 이상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아

그는 왜 그곳에 있었는지

 

사람들은 그를 통과해 나갔지

사람과 같은 모양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통과해

그가 보이지 않나 봐

 

수호천사의 실업률에 대해 생각해

손길이 없는 손에 대해

어쩌면 당번제로 일하는 천사들

단순하게 순환하는 희망 따라

돌고 있는 그를 생각해

 

숨어 있는 수호천사

시대의 고질병을 앓고 있는지

눈물과 콧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발자국마다 핏물이 흥건해

 

수호천사를 다른 말로 뭐라고 생각해

우연에서 벼려진 우연

 

 


  

이여원(李如苑) 시인

1957년 경남 진주 출생. 201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 『빨강』. 2015년 제16회 시흥문학상 대상 수상. 2018년 아르코 지원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