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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호 시인 / 닮은 사람
물속의 그가 말을 건낸 적 있지
입술을 떠나자마자 물결이 되어 심장을 조금씩 적시던 말
나는 그날 한없이 파동을 그리는 목소리를 지우려고 웅덩이를 메우고 돌아서고 말았지
하지만 그 후로 움푹한 것들은 모두 그가 숨어 있는 웅덩이가 되었지
어느 날은 술잔 속에서 또 어느 날은 때 낀 배꼽 속에서 우물우물 그의 목소리가 새어나왔지
너와 나는 울음까지 닮았구나, 빗방울처럼 시리고 비린 말 이제는 숨소리까지 다 말라버린 사람
아버지의 말을 다시 받아보려고 가슴 한쪽을 밤새 파내는 날이었지
길상호 시인 / 낡은 잠을 자려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여관방 벽은 낡은 입술을 갖고 있다
찢어진 벽지와 얼룩과 못자국과 낙서와 밀린 잠을 자는 당신과 쪼그려 앉아 당신의 밀어둔 잠을 생각하는 나와
벽의 목소리에 닿으면 낡은 것들은 조금 더 낡아가고 옷걸이에 걸어둔 스웨터는 벌써부터 올이 풀린 어깨를 늘어뜨렸다
병 속에 남은 건 소주처럼 밍밍해진 생활
당신은 잠꼬대로, 나는 허밍으로 새벽의 중얼거림을 따라해 보는 것인데
날이 밝으면 우리는 얼마나 더 헐거워져서 이 방을 나가게 될까
갈라진 입술을 뜨다듬어 보니 부스러기 몇 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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