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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손택수 시인 / 우정의 온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5.
손택수 시인 / 우정의 온도

손택수 시인 / 우정의 온도

 

 

컵을 씻다

컵 속에

컵이 끼었다

딱 붙어서 빠지질 않는다

 

우격다짐으로 떨어트리자면

둘 다 상처를 입겠지

빠져나오려 기를 쓰는 동안

금이 가거나 긁힌 흔적들이

내 손에까지 상처를 입힐 수도 있겠지

 

안쪽 컵엔 찬물을 붓고

바깥쪽 컵은 뜨거운 물 속에 담가 둔다

바깥쪽은 열기로 풀어지고

안쪽은 냉기로 오므라들면서

그 사이에 틈이 생기길 기다린다

 

더러는 서로 다른 온도가 필요하다

컵 속의 컵이 풀어지고 있다

 

 


 

 

손택수 시인 /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아파트를 원하는 사람은 위험인물이 아니다

더 좋은 노동조건을 위해 쟁의를 하는 사람도 결국은

노동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이 속한 세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루종일 구름이나 보고 할 일 없이 떠도는 그를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소유의 욕망 없이도 저리 똑똑하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사람, 혼자서 중얼거리는

행인들로 가득 찬 지하철역에서도

그의 중얼거림은 단박에 눈에 띄었다

허공을 향해 중얼중얼 말풍선을 불듯

심리 상담과 힐링과 명상이

네온 간판으로 휘황하게 점멸하는 거리

 

어떤 슬픔은 도무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사람이 사라지자 혼자서

중얼거리는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 찼다

 

 


 

손택수 시인

1970년 전남 담양 출생. 경남대학 국문과 졸업.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시집 『호랑이 발자국』 『목련전차』 『나무의 수사학』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부산작가상, 현대시동인상, 제22회 신동엽창작상 수상. 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