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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미영 시인 / 브로콜리도서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1. 29.
강미영 시인 / 브로콜리도서관

강미영 시인 / 브로콜리도서관

 

 

 책의 도시. 거기서 걷는다. 안보일 때까지 걷기 좋은 곳, 돌아오는 길을 잊어도 좋은곳, 동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상상 이상의 꿈이 출렁인다. 시가 죽고 시가 살아 있는

 말초세포까지 끌어 모아 몸에 붙어 있는 나무들을 키워 숲을 만든다.

 

 비릿하고 비릿한 어둠이 도시들을 밀어내고 나무의 숲에 빠져 든다. 빠져들던 슬픔과 기쁨들 뒤꿈치를 들고 건너본다. 몸에 가득 스민 결핍의 새순들 애수로 흘러 부르다만 노래로 미완성이다

 촘촘한 이름 속에 목적이 다른 것들과 함께 내 몸을 통과하는 작 은 소도시의 입을 닫고 여는 풍경의 풍경들

 

 책들이라는 이름 속에 쌓아둔 언어들이 무궁무진하여 머릿속을 비운다. 태어나기 전부터 자라는 나무들과 걷는다. 만개의 바람과 말이 끝도 없이 차오른 숲에서 사적인 은유를 꺼내 띄운다.

 

모든 경계가 사라지듯 미명 빛 끝없이 물든다.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갈까 내 몸에 오래 묵은 서정들 백 년 전 행간에서 넘실거린다. 목적이 다른 여행은 계속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강미영 시인 / 늙은 첼로의 레퀴엠

 

 

몸 안으로 팔도 구겨 넣고

다리도 쑤셔 넣는다

음악이 된다

 

케이스 안에 갇혀 있는 남자

몸은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제 살 뜯어내며

케이스 안에 갇혀 있다

 

양 어깨에 걸쳐진 다리 사이

현의 여자

활의 여자

뼈를 깎고 사는 허리 잘룩한 자웅동체

불두덩 더듬거리며

날마다 수음하는

꿈을 꾼다

 

그 남자는 첼로

수음을 한다

케인스 안 낡은 방에서

오늘도 음악같은

 

-시집 『Y는 느티나무』 (시와세계, 2014) 중에서

 

 


 

강미영 시인

서울에서 출생. 2004년 《시와 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 『Y는 느티나무』 『브로콜리 마음과 당신의 마음』. 제7회 시와세계 작품상 수상. 『시와 세계』 편집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