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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윤석호 시인 / 잭나이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7.
윤석호 시인 / 잭나이프

윤석호 시인 / 잭나이프

 

 

너를 낚기 위해

나도 내 몸을 바늘에 꽂아 넣으며

스스로 미끼가 되었지

몸속에 날을 품으려면

자신이 먼저 베여야 한다는 것

그래야 그 고통으로 남을 찌를 수 있는 거야

손에 들려진 채 날이 밖으로 나오면

찌르거나 찔리지 않고는 끝나지 않아

승부를 피할 수는 없어

날이라는 게 제 몸이 갈려 나간 흔적이잖아.

이를 악문 경련이 안으로 새겨져 있어서

단면의 비린 맛을 보지 않고는

불러서려 들지 않아

사랑이란 함께 깊어지는 거야

사랑이 끝나고 아픔을 느끼는 것은

서로가 깊게 찔렀다는 말이야

피가 철철 나긴 해도 아물면 감쪽같아

흉터는 안쪽에 생기니까

가끔 운이 나빠

날이 상대방의 가슴속에서

부러지기도 하지

두 사람은 남은 생 동안

다른 누굴 다시 찌를 수는 없어

나는 주머니 속 칼을 만지작거려

 

-시집 『4인칭에 관하여」 (2020년)

 

 


 

 

윤석호 시인 / 휘어진다는 것은

 

 

바람이 불다

휘어지는 곳에서 휘파람이 된다

휘어지는 모퉁이마다 바글거리는 바람

오래 머물면서 소리로 피지 못한

바람의 상처를 듣는다

 

새벽빛 휘어져 노을이 되고

저녁 무렵, 휘어져 돌아온 아버지의 그림자

잠자리에서도 펴지지 않던 어머니의 등

휘어진 가로등 밑에 흩어진 꽃다발

늦은 겨울 밤거리를 휘어져 걷는 사람들

휘어진 길에서만 되돌아 보이는

지나온 발자국들

 

휘어진다는 것은

꺾이지 않고도 절망을 알고

꺾이지 않았기에 탓하지 않고

둥글게 안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구김 없는 수긍이리라

 

 


 

윤석호 시인

1964년 부산 출생. 부산대 기계공학과 졸업. 2011년 미주 《중앙 신인 문학상》 당선. 201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4인칭에 관하여』. 현재 한국문협 워싱턴주 지부 회원, 시마을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