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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오민석 시인 / 유령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7.
오민석 시인 / 유령

오민석 시인 / 유령

 

 

새 떼들 불 탄 쓰레기처럼

서녘 하늘로 점점이 사라지는 저녁

그 적막한 지평선에서

마침내 종소리 울리면

너희는 가거라

돌아오지 말지어니

유령의 세월을 세월이라 하지 마라

삶은 온통 빛나고 아름다운 색깔들

검고 흰 것을 인생이라 하지 마라

붉은 해바라기와

노란 태양의 저 뜨거운 교신

(느끼지 못한 세계는 세계가 아니지)

푸른 하늘이

초록 강물이

끔찍하도록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혈관이 있기 때문

푸르고 푸른 혈관이 내 혈관과 내통하기 때문

죽음 없는 삶을 삶이라 하지 마라

 

모든 살아있는 것은

연민과 번민의 섬들

그 심장 언제 멈출지라도

헛된 유령의 세월은 사라져다오

오, 우리 몸을 흔드는 고통의 환희여

허튼 사랑을 붙잡지 마라

길 떠나다오

유령이여

 

 


 

 

오민석 시인 / 그대 눈물이 흐르면

 

 

그대 눈물이 흐르면

정선에서 기차를 타고

동해로 가라

그대의 죄는

지상 어디에도 없는

나라를 꿈꾼 것

그대 눈물이 흐르면

청진항의 눈발을 뚫고

시베리아로 갈 일이다

그대의 죄는

사랑을 잃고

다시 찾지 않은 것

거기 눈 내리는 벌판에서

카츄사에게 거절당한 네흘류도프처럼

반나절을 더 울 일이다

그대 눈물이 흐르면

사라진 피맛골의 해장국집을 찾지 말고

와사등 흔들리던 목포 항구로 가라

그대의 죄는

사람들의 양심을 아프게 찌른 것

 

목포에서 제주도까지

이제는 사라진 옛 페리호를 타고

열두 시간을 먼 바다에서 떠돌 일이다

그래도 눈물이 흐르면

돌아오라 탕자처럼 돌아오라

그대의 죄는

늘 불가능을 꿈꾼 것

돌아와 더 이상 나갈 곳 없는 유배의 삶을 살라

이곳은 눈물마저 유배시키는 겨울의 나라

그러나 이 겨울강의 어디쯤에서

눈발 그치고 그쳐

슬픈 그대

마침내 닻을 내리리

 

 


 

오민석 시인

1958년 충남 공주 출생. 경희대학교대학원 영어영문학 박사. 1990년 월간 <한길문학> 창간기념 신인상 당선 등단.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 평론활동 시작.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 『기차는 오늘 밤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운 명륜여인숙』, 문학이론서 『정치적 비평의 미래를 위하여』, 번역서 바스코 포파 시집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 등. 현재 단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