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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병수 시인 / 저문 강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12.
박병수 시인 / 저문 강

박병수 시인 / 저문 강

 

 

 밤을 종단하려면 저 강을 건너야하네 어둠이 나를 강변으로 끌고 왔네 모여든 사람들이 붉게 번진 노을을 밟고 수심에 잠기고 있네

 

 어른들은 날개를 벗어 하수관으로 흘려보냈네 악취 나는 날개들, 강바닥이 까매지네 물갈퀴가 제각각인 사람들이 물속을 더듬으며 걸어가고 있네

 

 물속 풍경에 쉽게 익숙해지네. 나는 왜 부레가 없는거야 숨이 막힐 것 같아

 

 먼저 떠난 사람들은 날개를 어디에다 버렸을까 물속의 새들은 그만큼 지느러미를 키웠을까

 

 어젯밤에는 비늘을 갖지 못한 젊은 여자가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하네, 흉흉한 소문이 수챗구멍 아래로 퍼지고 있네

 

 치명적인 독을 숨긴 전갈자리별이 꼬리를 길게 뽑아 달을 찔렀다하네 소문은 교각을 휘감으며 끊임없이 파문지네

 

 강둑은 천 년 묵은 묘지기처럼 수문을 키우고 있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더 큰 지느러미를 심겠다하네 저 물고기는 강을 건너는 대신 거슬러 오를 거라네

 

 인기척이 사라지고 수심이 깊어지네, 거센 물살이라 곧바로 밤을 종단할 수가 없네, 얼굴 가린 불빛이 강둑에서 반짝이네

 

 누군가 어둠을 뚫고 있네

 

-시집 『사막을 건넌 나비』에서

 

 


 

 

박병수 시인 / 경계의 술사들

 

 

지난겨울 햇살 뜸한 외곽도로에 빨간 코트를 벗어주고 떠난 고양이 기억나니

왕벚나무 숲길에서 고양이가 두 개의 번쩍이는 은륜을 타고 ‘퍽’ 하고 사라진 거야

쉿, 그건 기막힌 타임머신이었어!

 

그날 이후 도심의 나무들은 텅 빈 고양이의 뱃속에 타임머신의 카탈로그를

산더미처럼 쌓았지 날 선 도끼의 단단한 자루가 되어주었던 피노키오의 후예답게

타임머신의 성능에 만족하여 잠이 든 거야

 

잠 속에서 우리 동네 나무들은 키가 쑥쑥 자라 달의 얼굴을 가렸지

 

어둠 속으로 새 한 마리 날아가지 못했지

내가 잠든 곳은 새 떼를 꿀꺽 먹어버린 늙은 고양이의 뱃속

달의 눈을 파먹고 왕벚나무의 나이테에 숨어버린

 

 


  

박병수 시인

경남 창녕 출생. 2009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하반기 신인상 당선을 통해 등단. 시집 <사막을 걷는 나비>. 시산맥시회 회원. 영남시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