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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온 시인 / 색깔 놀이
두 팔을, 두 발을, 얼굴을 그리고 심장을 꺼내어 주물렀다
부드럽고 탄력 있다
흰 목장갑을 낀 두 손을 달아주고 검은 장화를 신은 두 발은 보이지 않아도 좋아 붉은 얼굴과 녹색 심장을 달아
화분에 꽂는 것은 여름의 여름
모서리를 잃어가는 변명은 묘하게 설득력 있는 파랑이고 곁을 주지 않고 겉도는 둘레는 너무 원색적이다 부지런한 폐허이거나 폭우와 폭염으로 떨어지는 파과이거나
두서가 없어도 괜찮다 떠올리는 일은 떼고 붙이고 치대는 여름이라서
깨진 화분에 눈 달아주기 커다란 눈과 그 너머로 이어지는 눈의 이야기
그것은 일종의 윙크와 같다 자주 깜빡이다 반쯤 내려온 눈꺼풀인 듯
여름 밖에서 여름의 밀도는 더욱 촘촘해질 것이다
화분처럼 진득하게 둘레를 돌보려는 떨림으로
더할 나위 없이 더운 여름을 만났다 -월간 『모던포엠』 2025년 11월호 발표
최지온 시인 / 생각하는 이끼들
움직이는 돌덩이들이라서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부드러운 뼈라서 온 몸이 불가사의라서
낮게 가라앉은 몸 곳곳에 부스러기를 뿌려 놓았다
언제 이렇게 불쑥 자랐지?
한꺼번에 무너져도 할 말은 많고 걷어 차여도 할 말이 없는
돌담이 된다면 우리 따뜻해질 수 있지 않겠니 볼을 부풀리며 돌덩이가 자란다면
오늘의 돌담은 아름다운 건축물이 되고
기대는 바람도 매달리는 그늘도
돌담을 걷는 모든 사람들은 연인이 될 수 있으니까
오늘은 아버지가 죽고 오늘은 아이가 태어나고
낮고 푸르게 이지러지면서
긴 팔을 내밀어 우리를 둘러싸 주시길 뼈가 상하는 것에 개의치 말아 주시길
일어날 이유도 없고 일어설 이유도 찾지 못한
헛뿌리에 기대서라도 꿋꿋해질 것 -계간 『시인시대』 2025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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