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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화빈 시인 / 모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6. 2. 15.
문화빈 시인 / 모자

문화빈 시인 / 모자

 

 

나는

막내로 태어나 귀염을 받았다

그러나 심심함이 부록처럼 따라다녔다

 

텅 빈 마당에서

지나가는 개미를 건드려 보다가

소쿠리를 뒤집어쓰고

누렁이에게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장화 신은 딱정벌레 이야기

 

그때 눈을 끔뻑이며 내 말을 듣던 누렁이는

우리 집 가난을 혹처럼, 달고 다니다가

별이 되었다

 

가난을 얼기설기 꿰매서 입는 우리 집을 탈출한 것이다

손 있는 날이었다

그날 밤에도 나는

누렁이가 UFO를 타고 떠났다는 생각을 지었다

 

이제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그것이 제일 걱정되는 밤이었다

 

-군산시인포럼 제4집 『바다의 메일』 <신작시> 에서

 

 


 

 

문화빈 시인 / 잘가요, 반딧불이

 

 

그 밤 별빛이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데네브에서 편지가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사랑과 적멸의 시간이 왔다.

지상에 부질없는 답신들이 날았다.

 

가볍게 날아오른 한 별이 잠깐

무겁게 날아오른 한 별이 잠깐

어두위서 찬란했던 그 때

허공의 팔을 베고 있다는 것도 잊고

맹목의 정열을 태웠다.

 

감당할 수 없는 가벼움에 멀미를 앓다가

고통의 두꺼운 막을 찢으며 추락했지만

떨어지는 빈 허공에서 기울기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비틀거리고 구겨질 때

종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고

그 소리에 떠밀려 아침은 오고야 말았다.

 

그들은 찰나로 만나 적막한 홍수 속으로 사라진다.

 

 


 

문화빈 시인

군산 임피에서 출생. 본명: 문정숙. 대학원에서 지역문화콘텐츠학을 공부. 2020년 계간 《미네르바》 추천 등단. 시집 『파이( π)3.1415926...』 출간.